10.29 참사 당사자 김초롱(33)씨가 17일 저녁 서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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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요. 이 거리.”
지난해 10월29일 밤, 친구와 함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인파에 휩쓸렸다가 겨우 빠져나온 김초롱(33)씨가 1주기를 앞두고 한겨레와 함께 다시 그 거리를 찾았다. 아직도 생생했다. 어느 가게를 들렀고, 무엇을 봤고,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발이 둥둥 떴는지. 초롱씨는 말없이 사고가 난 골목을 응시했다. 괴로워도 다시 그 거리를 걷는 건, “기억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17일 저녁 6시 초롱씨는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입구에 섰다. 참사가 일어났던 그 날 초롱씨는 서울지하철 녹사평역부터 분장한 아이들을 구경하며 이 거리로 왔다. 해밀톤호텔 뒤편까지는 200여m. 그곳을 가야 했던 이유에 대해 초롱씨는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해밀톤호텔 뒤편은 사진명소로 유명했다. 배트맨, 해리포터…핼러윈 데이를 맞아 좋아하는 캐릭터나 컨셉으로 공들여 분장한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저녁을 먹은 사람들은 그곳을 구경하려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성인 대여섯명이 일렬로 걸으면 꽉 차는 좁은 길이었다. 초롱씨는 거리로 연결된 골목길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이 골목은 만두가 유명했고, 다른 골목은 술집이 유명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포기하고 거리로 올라온 사람들도 있어요.” 또 다른 ‘포토스팟’을 소개하기도 했다. “분장한 사람들이 기다려서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에요.” 어디든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까 가게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호텔 뒤편으로 가자고 했어요. 골목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거든요.”
좋아했던 가게, 그날 인상 깊었던 분장을 하나둘 소개하던 초롱씨는 갑자기 거리 한 지점에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였어요.” 인파에 휩쓸려 친구의 손을 놓쳤고 사고가 났던 골목 쪽으로 저절로 몸이 이동했다. 발이 둥둥 떴다. 사고 장소와는 20여m도 안 되는 지점이었다. “갑자기 키 큰 남자가 뭔가를 봤는지 ‘뒤로 가라. 여기 진짜 안 된다’면서 반대편으로 밀었어요.” 초롱씨는 상황을 짐작하지도 못한 채 겨우 인파를 빠져나왔다. 인근 가게에 자리 잡아 숨을 돌리던 초롱씨는 자정이 되어서야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았다.
김초롱씨가 17일 저녁 서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서 있다. 이 거리는 참사 당일 초롱씨가 인파에 끼어 있던 장소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초롱씨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그 자리에 서봤다. 고개만 돌려도 사고가 난 골목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위에 걸린 가게 간판밖에 안 보였거든요. 한 발자국만 더 갔더라면…. 돌아보니 더 무섭고 소름 끼치는 거죠. (살아남은 건) 순전히 운이었구나.” 그 골목과 거리, 그때 보였던 가게의 간판들을 눈에 담던 초롱씨는, 잠깐 말이 없어졌다.
초롱씨가 이 거리를 찾는 건 반년 만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판정받았던 초롱씨는 “애도를 하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듣고 용기를 냈다. 가게와 골목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지난 2월 생일에도 친구와 가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도 갔다.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죠.” 치료를 중단할 무렵인 지난 4월을 마지막으로, 용기를 낼 힘이 없어 한동안 찾지 않았다.
대신, 지난 1년간 치료와 극복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간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1주기를 앞두고 세상에 나온 책 이름이다. 초롱씨는 자신을 생존자가 아닌, ‘참사 당사자’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죽을 걸 알면서 뛰어들었는데 살아났다면 ‘생존자’지만, 의도치 않게 참사를 맞이했으니 ‘당사자’라고 생각해요.”
모든 걸 제대로 보고 기억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야 ‘왜 그곳에 갔을까’라는 죄책감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롱씨가 2016년부터 핼러윈마다 찾았던 이태원은 가장 사랑스럽고 즐거운 공간이었다. 한번은 ‘파란 라이언’ 분장을, 다른 땐 ‘뽀로로’ 분장을 하고 갔다. 초롱씨는 참사 직후 ‘사람 많은 곳에 놀러 간 게 문제’라는 시선을 계속 이겨내야만 했다. 그래서 이태원에서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초롱씨는 생각했다. ‘위험을 알릴 수 있는 마이크나 전광판만이라도 있었다면….’
초롱씨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인데 사람이 많이 몰린다면 인파 관리는 정부가 해야 한다”며 “그걸 못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귀와 눈, 코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진 많은 희생자의 모습을 직접 봤던 초롱씨는 “압사는 ‘진짜 재난’이니까요”라고 덧붙였다.
김초롱씨는 “올해도 이태원에 갈 거다. 맥주 한잔 하러 가겠다”고 다짐했다. 초롱씨는 17일 저녁 서울 이태원에서 비로소 ‘첫 맥주’를 마셨다. 김가윤 기자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 공청회 자리서 초롱씨는 “올해도 이태원에 갈 거다. 우리는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태원과 핼러윈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했다. 1주기가 다가오는 지금 그의 마음은 ‘사실 잘 모르겠다’였다. 참사 이후 초롱씨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는 걸 무서워하게 됐기 때문이다. 핼러윈 데이를 앞둔 주말의 이태원은 북적일지, 분위기가 어떨지 가늠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초롱씨는 “이태원에 맥주 한잔하러 가겠다”는 다짐은 지켰다. 어느새 1년이 되어가는, 이태원의 그 거리가 보이는 곳에서 참사 이후의 ‘첫 맥주’를 마셔보는 초롱씨는 살며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또래나 어린 친구들한테도 ‘눈치 보지 말고 더 잘 놀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태원에 갔던 게 잘못이 아닙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