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후 처음 기소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지난해 11월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정보수집 활동에 써야하는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유용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른바 ‘스폰서 검사’ 김형준 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부장검사)이 한달 수백만원 상당의 특활비나 특정업무경비(특경비)를 사적으로 이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18일 한겨레가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재판기록 등을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김 전 부장검사는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2016년 12월 법원에 낸 ‘사실조회신청서’에 “2015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 재직 당시 월 200만원 내지 400만원을 특정업무경비로 지급 받았다”며 “해당 현금을 사적 관계인에게 지급하는 등 개인적인 용처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김 전 부장검사는 고교동창인 ‘스폰서’ 김희석씨에게 돈을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을 소명하기 위해 평소 특정업무경비를 사용했다는 내용의 서면 신청서를 작성·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판 과정에서 검사가 ‘횡령을 자인하는 것인가’라고 물었고, 김 전 부장검사는 신청서를 철회했다고 한다.
당시 김 전 부장검사 은행 계좌에는 현금 수백만원이 비정기적으로 들어온 내역도 발견된다. 2012년 김 전 부장검사 계좌를 보면, 김 전 부장검사가 검찰청사 옆 법원 건물 은행에서 많게는 천만원, 적게는 200만원을 본인 계좌에 한두 달 단위로 입금한 흔적이 보인다. 계속해 2014년까지 많게는 800만원 적게는 100만원가량의 현금이 검찰청과 인접한 법원 청사 은행 등에 비정기적으로 수차례 입금되는 내역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는 일부 특활비가 검사들에게 현금 형태로 월급처럼 정기지급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 전 부장검사가 횡령하거나 유용했다고 의혹이 이는 자금은 특활비 내지 특경비로 추정된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등에 쓰이며 통상 현금으로 먼저 선지급된다. 특히 영수증 제출이 필요 없어 유용 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경비는 수사 등 특정 업무수행에 소요되는 경비 충당을 위해 쓰이는 돈이다. 사용 내용을 증빙해야 하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지출 내역만 기재해도 돼 ‘제2의 특활비’로 통용된다. 하지만 특활비와 특경비 모두 개인 용도로 사용하면 불법이다.
스폰서로 지목되어 온 김씨는 19일 오후 2시께 김 전 부장검사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할 예정이다. 김씨의 법률 대리인 권준상 변호사는 “김 전 부장검사가 근무지에 있는 법원 은행 지점에 현금을 무통장 입금했고, 해당 금액을 사적으로 썼다고 보이는 자료를 발견해 고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직 검사는 공수처가 기소할 수 있는 대상에 포함된다. 한겨레는 김 전 부장검사의 해명을 받기 위해 그의 변호인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3월 김 전 부장검사가 2016년 변호사인 피의자의 수사 편의를 봐준 대가로 11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며 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지난 11월 김 전 부장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해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김 전 부장검사는 김씨에게 현금 3400만원과 향응 2400만원 상당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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