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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유인촌 장관 시절, ‘좌파 집단 인적 청산’ 문건 따라 해임됐다”

등록 2023-09-26 17:08수정 2023-09-26 18:02

유인촌 장관 때 ‘위법 해임’된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인터뷰
2010년 2월 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임처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뒤 복귀한 김 위원장이 전체회의에 참석하려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0년 2월 8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임처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뒤 복귀한 김 위원장이 전체회의에 참석하려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명박 정부에서 ‘좌파들을 견제하라’는 문건을 만들어 그걸 아래 기관들에 심하게 압박을 가했었다. 해임되기 며칠 전 문체부 차관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당시 차관이 ‘빨리 자진해서 해임하라’는 말을 했다. (차관이) 상당히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는데, 당시 장관이 있는데 차관이 무슨 책임이 있었겠나. 며칠 뒤 해임 통보를 받았다.”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77)은 유인촌(72)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위법한 해임’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08년 유인촌 문체부 장관 시절 이른바 ‘문화계 인사 좌파 찍어내기’로 해임됐다가 2010년 대법원에서 해임처분 무효 소송에서 승소했다.

김 전 위원장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당시 기관장 해임은 이명박 정권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문건에 따라 이뤄진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이 만든 대외비 보고서로, 좌파 집단 인적 청산 및 재정 지원 중단 및 건전 문화 세력(우파) 형성 지원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문건에서 제시한 ‘좌파 집단에 대한 인적 청산’ 전략에 따라 문체부 산하 기관장이 직권 면직 또는 해임된 경우가 최소 20건”(2019년 문체부 발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백서)에 달했다.

유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3년 동안 김 전 위원장을 포함한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장 사퇴를 압박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김 전 위원장은 “앞으로 그런 일(블랙리스트)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게 나 같은 사람이 희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2월19일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오른쪽), 오광수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동시에 참석해 의원들의 공방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업무보고에는 해임처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뒤 복귀한 김 위원장과 이후 임명된 오광수 위원장이 동시에 참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10년 2월19일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오른쪽), 오광수 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동시에 참석해 의원들의 공방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업무보고에는 해임처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뒤 복귀한 김 위원장과 이후 임명된 오광수 위원장이 동시에 참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 전 위원장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교육자, 문화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하다 2007년 9월 문화예술위원장에 발탁됐다. 그러나 유 후보자는 2008년 3월 당시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지닌 기관장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등 전 정권 인사 물갈이를 공언했고, 이후 문체부 감사실은 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한 ‘특별 조사’를 진행했다. 끝내 2008년 12월 기금운용 손실 등을 이유로 김 전 위원장은 해임 통보를 받았다.

2010년 2월 대법원에서 해임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다며 해임처분 취소 확정 판결을 받고 업무에 복귀했다. 국회에서 열린 문화예술위 업무보고에는 해임처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뒤 복귀한 김 전 위원장과 이후 임명된 오광수 위원장이 동시에 참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21년 펴낸 자신의 회고록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에 사퇴 압박을 받던 시기를 돌이켜보며 “나는 ‘법으로 정해진 임기가 있고, 그전에 나는 꼼짝 안 한다’는 결심을 되뇌었다”고 적기도 했다.

이날 김 전 위원장은 새 문체부 장관의 할 일로 “예술과 인문학 전반에 집중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K)팝 등 산업 차원에서 문화 산업에 집중하는 것은 좋으나, 결국 정책의 방향은 훌륭한 결과가 잘 열매 맺을 수 있는 토양을 일구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후보자는 ‘좌파 인사 찍어내기’를 부인하고 있다. 유 후보자는 25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자료에서 ‘이명박 정부 장관 재임 시절 산하기관 인사 사퇴 압박 논란’에 대해 “당시 기관 운영상의 효율성이나 성과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기관장에 대해 해임 또는 계약 해지한 것”이라고 답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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