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레 학살’ 생존자 응우옌응옥우언(70)이 통기타를 치며 베트남 전쟁 당시 나쨩(나트랑)에 주둔했던 백마부대(육군 9사단)의 군가를 부르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세운 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통기타를 든 응우옌응옥우언(70)의 입에선 한글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발음은 다소 뭉개졌지만, ‘백마고지 용사들’이란 단어는 뚜렷하게 들렸다. 이 노래는 1966년 4월 베트남 나쨩(나트랑)에 주둔했던 대한민국 육군 9사단(백마부대)의 군가 ‘달려라 백마’다.
응우옌응옥우언은 1966년 백마부대 병사들과 교류하면서 태권도와 함께 이 군가를 배웠다고 한다. ‘아리랑’도 부를 줄 아는 그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또 다른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 목격자다. 지난 9일 한베평화재단 쪽이 카인호아성 닌호아사 쩝레마을에서 그를 만났고, 응우옌응옥우언의 소개로 당시 학살에서 생존한 이들의 증언을 들었다.
응우옌응옥우언의 한국군과의 추억은 이듬해 끝났다. 1967년 10월26일, 한국군이 총을 마을 주민들에게 겨누면서다. “베트콩(혁명군)이 마을로 온다는 얘기만 들었지 한국군이 민간인들을 죽일 줄은 몰랐다.” 아버지와 1㎞ 떨어진 다른 마을로 피신해 살아남았던 쩜러이꾸옥(61)이 말했다.
그는 지역 인민위원회 간부였던 아버지 덕분에 한국군이나 혁명군의 마을 진입 소식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연로해 이동하기 어려웠던 할머니와 막내 여동생을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머니, 이들을 돌보려고 집에 남았던 형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포함, 쩝레마을에서 28명의 주민이 하루아침에 희생됐다.
“너무 슬펐고, 온몸이 무너지는 듯했다.” 쩜러이꾸옥은 학살 이틀 뒤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의 죽음을 봤다. 막내 여동생 쩐티흐우프억타인은 부상을 입고 1달 뒤 병원에서 끝내 숨졌다. 누나 쩜티탄(65)은 살아남았지만, 몸 이곳저곳에 총알과 수류탄 파편이 박혔다. 쩜티탄은 수술로 빼지 못한 총탄 하나를 아직 몸 안에 품고 있다.
비엔꾸옥스(60)와 비엔꾸옥틴(56) 형제는 ‘쩝레학살’로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남베트남군에게 정보를 수집해 전달하는 통역병이었다. 학살 당시, 아버지는 잠시 휴가 중이었다. 비엔꾸옥틴은 “(한국군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계속 ‘VC(베트콩)’라고만 했다. 그러고선 집 아래쪽으로 끌고 가 총으로 쐈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버지가 남베트남 쪽 군인이라 안전할 것이란 믿음도 박살이 났다. “아버지도 그렇게 죽을지 몰랐을 것이다.” 형 비엔꾸옥스가 말했다.
이런 기억을 전해준 것은 당시에 살아남았던 형제의 어머니(쩜티죽, 2006년 사망)였다. 형제는 어머니가 남편을 살려달라며 한국군에게 빌다가 다른 병사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비엔꾸옥틴은 “어머니는 아들들이 슬퍼할까 봐 피해 사실을 들려주지 않았었다”며 “나중에 어머니가 보상을 요구하려고 했으나 한국군 병사들의 이름도 나이도 몰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응우옌응옥우언은 학살 이후 마을로 돌아와 이들의 얘기를 듣게 된다. 그는 쩝레학살 전, 주둔했던 백마부대 병사들이 혁명군 때문에 큰 피해가 여럿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한국군이 마을 주민들을 쏜 이유라고 그는 생각했다. 일종의 ‘보복 학살’이었던 셈이다. 그는 2018년 자신이 들었던 얘기를 책으로 만들었다. 카인호아성 사람들의 ‘전쟁 이후의 삶’을 기록하는 차원이었는데, 학살 당시의 일이 가장 기억에 남고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응우옌응옥우언은 그러면서도 당부하듯 말했다. “당시엔 전쟁 중이었다. 한국군이 모두가 나쁜 이들은 아니었다. 태권도를 가르쳐 준 한국군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왼쪽은 ‘쩝레학살’ 생존자 쩜러이꾸옥(왼쪽에서 4번째)의 가족 사진. 아버지(가운데)가 든 푯말에 ‘쩝레’란 글씨가 쓰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학살 피해로 부상을 입은 막내 여동생 쩐티흐우프억타인. 한베평화재단 제공
쩝레학살 생존자 동생 비엔꾸옥틴(왼쪽)과 형 비엔꾸옥스(오른쪽)가 부모님 묘지 앞에서 서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1999년 11월 촬영한 비엔꾸옥스 형제 가족 사진. 왼쪽이 형 비엔꾸옥스, 오른쪽이 동생 비엔꾸옥틴. 가운데는 이들의 엄마 쩜티죽이다. 고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