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조례안도 21일 경기도의회 통과
사회복지법인 ‘효경의손길’ 관계자들이 학교급식 잔식을 통에 담아 이동하고 있다. 효경의손길 제공
‘아이들이 손도 대지 않은 깨끗한 밥과 국, 멸치조림, 돼지고기볶음 등을 저렇게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데? 아까운 음식을 버리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할 방법은 없을까?’경기도 수원 효원고 행정실장으로 근무한 오종민(53)씨는 매일 학교에서 나오는 잔식(배식 안한 남은 음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였다. 깨끗한 음식을 그냥 버리는 것도 아깝고,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으로 학교에서 매달 150만원이나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실장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다 ‘푸드뱅크’ 업체를 떠올렸다. 푸드뱅크 업체에서는 식품제조업체나 개인으로부터 식품을 기탁받아 이를 취약계층에 지원하고 있다. “깨끗한 음식을 푸드뱅크에 보내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드린다면 그야말로 ‘일석삼조’라고 생각했어요. 음식이 필요한 독거노인들은 학교에서 만든 질 좋은 음식들을 받을 수 있고, 학교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여 예산을 절감할 수 있잖아요. 사회 전체적으로는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할 때 온실가스 배출이 많이 드는데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요.” 오 실장은 자신의 생각을 최영수 교장에게 보고했다. 교장도 흔쾌히 ‘학교급식 잔식 기부’를 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뭐든 생각은 쉬워도 실행은 어렵기 마련이다. 영양사 등 학교급식 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은 ①푸드뱅크로 음식을 보낼 법적 근거가 없다 ②식중독 사고가 났을 때 책임져야 할 문제가 있다 ③일이 추가된다면 또다른 업무가 증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 실험에 반대했다. 반대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오 실장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무원들에겐 법적 근거 중요하죠. 법적 근거는 조례 등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식중독 사고는 푸드뱅크 업체랑 ‘식중독 사고가 나더라도 학교가 책임지지 않는다’라는 계약서를 명확하게 쓰면 된다고 생각했고요. 일단 해보면 알겠지만 업무가 느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 수 있다고 반대하는 분들을 설득했습니다. 딱 두 달만 먼저 해보자고 했지요.” 수원 효원고의 ‘학교급식 잔식 기부’ 실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해 9월27일부터 시작된 이 실험은 두 달 시행 뒤 반대했던 사람들도 찬성으로 돌아설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푸드뱅크 업체 관계자들이 학교에 음식을 담아갈 통을 가지고 온다. 조리사 선생님들은 무거운 음식을 쓰레기통으로 가져갈 필요가 없고, 깨끗한 음식을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덜었다. 총 1100명이 다니는 이 학교에서 평균 1일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이 117kg 줄었고, 이로 인해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도 매달 50만원씩 절감했다. 음식을 받는 어르신들도 만족했다. 저소득 취약계층 재가어르신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효경의손길’은 그동안 어르신 100여명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밑반찬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효원고의 잔식 기부 덕분에 어르신 20~30명에게 매일 밑반찬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한아무개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이 평상시에 못 사드시는 고기류 등 반찬이 다양해져서 기다리게 된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대통령소속 자문위원회인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오종민씨가 ‘학교급식 잔식 기부’가 온실가스 배출 절감에 어떻게 도움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오종민씨 제공
학교급식 잔식을 기부받은 어르신들은 음식의 질과 양에 만족해하고 있다. 아이들이 손대지 않은 깨끗한 음식들이 쓰레기통으로 가지 않고 꼭 필요한 독거노인들에게 전달됐다. 효경의손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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