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 전북도교육청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는 49재에 열릴 ‘9·4 교육 회복의 날’ 앞서 도 교육청이 각 학교에 ‘복무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자 항의의 의미로 근조화환을 보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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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장난하던 학생에게 이른바 ‘레드카드’를 주고 방과후 청소를 시킨 담임교사를 교체해달라고 지속해서 요구한 학부모의 행위는 ‘부당한 간섭’이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담임교사 교체 요구는 비상적인 상황에서 교육방법의 변경 등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 보충적으로만 허용된다”는 판례를 대법원이 처음 내놨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지속적인 담임교사 교체 요구를 이유로 초등학교 교장이 학부모 ㄱ씨에 대해 ‘교육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도록 권고’ 조처를 하자 ㄱ씨가 처분 취소를 구한 사건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적법한 자격을 갖춘 교사가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이 존재하는 영역인 학생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 한 판단과 교육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존중돼야 하고, 부모 등 보호자의 교육에 관한 의견 제시도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학부모의 담임교체 요구는 비상적인 상황에서 보충적으로만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원고(학부모)가 반복적으로 담임교체를 요구한 행위는 교육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1년 4월 ㄱ씨의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은 수업 중 생수 페트병을 가지고 놀며 소리를 계속 냈다. 담임인 ㄴ교사는 생수 페트병을 뺏은 후 그의 이름표를 칠판의 레드카드 부분에 붙였다. 방과 후에는 교실 청소를 14분가량 시켰다. 아들이 하교한 뒤 ㄱ씨는 학교 교무실로 가서 “학생에게 쓰레기를 줍게 한 것이 아동학대이고, ㄴ교사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 ㄱ씨 부부는 ㄴ교사에게도 직접 항의했다. 사건이 발생한 4월20일부터 약 한 달 동안 ㄱ씨는 아들을 결석시키거나 학교 방문, 전화 등을 통해 담임 교사 교체를 지속해서 요구했다. ㄴ교사는 스트레스로 병가를 냈다.
결국 ㄴ교사는 같은 해 7월 교장에게 ㄱ씨의 행위에 대해 ‘교육활동 침해 사안 신고서’를 냈다. 같은 달 ㄱ씨는 ㄴ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학교는 이후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출석위원 6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교육활동 침해행위’라고 결정했다. 이후 ㄱ씨에게 ‘교육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도록 권고한다’는 내용의 통지서를 보냈다.
ㄱ씨는 전라북도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는데, 당시 위원회는 ㄴ교사의 ‘벌점제’ 운영은 “학생의 인격권과 휴식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경찰도 ㄴ교사가 교육청에서 허용하지 않는 상벌점제를 실시한 건 아동학대 혐의 사실로 인정했지만 기소유예 결정(불기소)했다.
ㄱ씨의 행위가 교권침해인지를 두고 1심과 2심 판단은 극명하게 갈렸다. 1심 재판부는 ㄱ씨의 담임교사 교체 요구 행위는 “ㄴ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로서 교권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또 “이 사건 조치에 의해 달성하려고 하는 교권보호의 공익이 학부모가 입게 되는 불이익에 비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2심은 학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ㄴ교사의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2심 재판부는 “레 드카드 벌점제는 교사가 훈육에 따르지 않는 아동의 이름을 공개해 창피를 줌으로써 따돌림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강제로 청소노동까지 부과한 것이어서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침해행위”라며 “정당한 교육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교육방식에 대한 학부모 ㄱ씨의 지속적인 시정요구가 있었으나 학교 쪽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학부모의 ‘과도한 항의’를 학교가 촉발했다는 취지다. 2심은 교권보호위원회에 ㄱ씨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과 “아들의 결석은 학교폭력 피해”라는 ㄱ씨의 주장, 다른 학부모들도 ㄴ교사의 교육방식에 불만이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학기 중에 담임에서 배제되는 것은 해당 교사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고 인사상으로도 불이익한 처분이며, 학교장에게는 학기 중에 담임 보직인사를 다시 하는 부담이 발생하고, 해당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담임교사의 변경으로 인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ㄱ씨의 요구를 부당한 간섭행위로 봤다.
대법원은 또한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의 존중, 교육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31조4항 등을 근거로 “적법한 자격을 갖춘 교사가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이 존재하는 영역인 학생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 한 판단과 교육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존중돼야 하며,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나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이 이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부모가 반복적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담임교사로서 온전한 직무수행을 기대할 수 없는 비상적인 상황에 한하여 보충적으로만 허용된다”고 했다.
앞서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사건 이후, 교사들은 정부가 교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해왔다. 이에 이날 교원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그간 교사들은 정당한 교육활동, 생활지도임에도 학부모들의 사과와 담임 교체 요구에 우울증을 호소하고 병가를 내는 등 고통을 겪어 왔다”며 “교사에게 부여된 생활지도권을 사법적으로도 뒷받침하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대변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실제로도 교사의 교육 방침이 자신의 자녀와 맞지 않는다며 무리하게 담임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교육활동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줄어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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