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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일터 위협 스토킹…‘사업주가 피해자 보호’ 법적 의무화를

등록 2023-09-14 05:00수정 2023-09-14 07:10

현행 스토킹방지법으론 일터에서 가해자와 신속 분리 안돼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1주기 추모공간에 헌화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1주기 추모공간에 헌화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대학원 연구실에서 학업과 연구를 병행하던 ㄱ씨는 같은 연구실에서 일한 ㄴ씨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 ㄴ씨는 ㄱ씨 커피에 최음제를 몰래 넣거나, 칫솔에 이물질을 묻히는 등의 방식으로 ㄱ씨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이 사건으로 ㄱ씨는 “대인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정신적 피해와 고통”을 받았으며, 연구자로 사는 삶을 포기해야 했다. 

‘직장 내 스토킹’이 발생하는 순간 일터는 지옥이다. 상사 또는 동료인 스토킹 가해자와 매일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한 채, 이들의 지속적인 스토킹과 업무방해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엉뚱한 소문이 퍼지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가해자는 사내 연락망을 통해 ‘나’의 개인정보를 낱낱이 파악해 집과 출퇴근길 주변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괴롭힐 수도 있다. 두려움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먼저 직장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직장 내 스토킹’ 피해자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이런 고통에 노출돼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스토킹 방지법’(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 7월18일 시행됐지만, 직장 내 스토킹 피해자 보호 대책이 미비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분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13일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직장 내 스토킹에 대한 정책적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직장 내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사업주의 조치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스토킹 방지법은 ‘사업주는 직장 내 스토킹 예방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사업주가 피해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조치를 할 경우 형사처벌한다’ ‘피해자가 요청하면 사업주가 피해자의 업무 연락처 및 근무장소 변경, 배치 전환 등을 할 수 있다’고 할 뿐, 피해자 보호를 위한 공간 분리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스토킹 처벌법’(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찰과 법원이 ‘잠정조치’(피해자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구금 등) 등 더 강력한 조처를 취할 수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피해자가 경찰 등 사법기관에 사건을 신고했을 때의 얘기다.

반면, 직장 내 성희롱 방지 조항이 있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에게 적극적인 예방과 2차 피해 방지 의무를 부여한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되면 지체없이 조사해야’ 하고, ‘조사 기간에도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이 확인되면 가해자를 지체 없이 징계하거나 가해자의 근무 장소를 변경해야’ 한다.

보고서를 쓴 연구진은 “스토킹 처벌법상 응급조치 또는 잠정조치 등은 (스토킹) 행위자와 피해자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경우 사용자에 의한 별도 조치가 없다면 이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에 “스토킹 방지법에 사업주가 피해자 보호조치 위반 시 과태료 등 법적 처분”이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을 담는 한편 “회사가 스토킹 피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 사용자가 잠정조치로 (가해자에게) 스토킹 범죄 중단에 관한 서면 경고, 피해자로부터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사내 연락망이나 회사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접근 금지 등을 (법령에) 규정하는 게 직장 안에서 (스토킹) 행위자 제재와 피해자 보호가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사업주가 직접 나서 가해자가 회사 내부망 등을 이용해 피해자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한편, 가해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와 관련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9개 주가 ‘직장폭력방지법’을 통해 직원 및 그 가족들에 대한 스토킹 등 폭력이 실제로 발생했거나 그 위협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사업주가 직접 가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피해자의 사적인 문제가 직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식의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직장에서 시행하는 ‘성폭력 예방교육 및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등에 ‘스토킹 행위 및 예방’에 관련한 내용을 포함하고,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사용자의 조치 의무가 법에 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이 업무 수행 중에 고객으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입은 직원에게 사업주가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한 것처럼, 스토킹 가해자가 거래처 상대, 고객 등 직장 밖 사람인 경우에도 사업주가 피해자인 직원을 보호하도록 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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