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입주해 있던 론스타.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론스타에 2억1600만달러(약 2851억원)를 배상하라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중재판정부가 결정적 증거 없이 한국 정부의 배상의무를 인정했고, 증거 채택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변론권과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아 절차상 위법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2012년에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사건 판정에 대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취소신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한국 금융당국이 매각 승인을 늦게 내리는 바람에 외환은행을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는데 손해를 봤다며 국제투자분쟁을 제기했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는 10년이 지난 2022년 8월 한국 정부에 2900억원에 이르는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협약은 중재판정 취소 신청 사유를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협약에 따르면 △중재판정부 구성 흠결 △판정부의 명백한 월권 △중재인의 부패 △심각한 절차규칙 위반 △이유 불기재 등 5가지만 취소사유로 인정한다.
중재판정부가 결정적 증거 없이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이 법무부의 취소신청 제기의 배경이다. 법무부는 “판정부는 국제법상 국가책임의 인정요건인 금융위의 ‘구체적인 위법행위’를 전혀 특정하지 않”았다며 “(중재)판정부 스스로도 이 사건에서 결정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니 입증책임 원칙에 따라 론스타의 청구를 기각했어야 함에도 오히려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중재인인 브리짓 스턴 교수 역시 소수의견에서 추측성 증거, 전문증거만으로 국제법 위반 행위로 인한 정부의 책임귀속을 인정한 판정례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외환은행 매각 지연이 ‘론스타의 주가조작 범죄’ 탓에 발생했다고도 했다. 론스타가 하나은행에 외환은행 매각하기로 처음 계약했던 시점은 2010년 11월인데, 이미 당시는 론스타의 주가조작 행위로 인해 각종 수사가 진행되던 때였다. 론스타의 주가조작은 2011년 10월 유죄로 확정됐다. 그해 12월 론스타와 하나 은행이 매각계약을 수정했고 2012년 1월 금융위는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자회사 편입승인을 의결했다.
법무부는 “론스타의 주가조작이 없었다면 매매대금 인하도 없었을 텐데 (중재)판정부는 특별한 근거나 설명 없이 정부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보고 주요 쟁점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다”며 “(중재)판정부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투자 및 수익 실현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가졌다고 설시하면서도, 그 기대의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중재판정은 중재판정부의 명백한 월권, 절차규칙 위반, 이유 불기재에 해당해 취소신청 대상이 된다는 것이 법무부 주장이다. 취소 신청이 신청되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는 3명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서면 심리하고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심리는 통상 1년 가량 걸린다. 론스타도 지난 7월 손해산정 과정 등에 위법이 있다고 주장하며 취소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승산 없는 취소소송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중재무효 특별위원회는 인과관계와 같은 실체적 쟁점이나 원래 중재판정부의 심리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타당한 취소사유가 아니다”라며 “무익한 무효 신청보다는 한국 정부 패소의 원인을 제공한 금융감독원의 불법 행위와 하나금융의 관련성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 8월 판정 이후 정부가 취소신청 여부를 고민해온 1년동안 불어난 배상이자만 1040만달러(약 137억원)에 이른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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