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인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이균용(61)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의 첫 일성은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하겠다”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주도해온 법원 개혁에 비판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이 후보자가, 지명 이후 다시 한번 현 체제에 대해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관료화 해소를 위해 사법행정권한의 분산에 집중했다면, 이균용 후보자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어서 사법부가 관료제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후보자는 23일 대법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 아시다시피 최근에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고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해보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진해온 일련의 사법개혁 정책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승태 사법부 법원행정처의 사법농단 이후, 대법원을 정점으로 한 위계적인 조직 구조를 해체하는 일에 집중해왔다. 사법농단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사건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강력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소수만을 승진시키는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이용해 판사들을 통제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관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폐지했다.
제도 도입 이후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승진’ 인센티브가 사라지자 판사들이 ‘워라밸’을 추구하게 됐고, 재판 지연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었다. 이 후보자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등법원 부장 제도가 없어지면서 자신을 희생하며 재판에 몰입하는 판사들에게 유인책이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법원장을 판사들이 직접 추천(법원장 추천제 도입)하게 하고, 재판 배정 업무를 법원장이 아닌 별도의 위원회에 이양(사무분담위원회 설치)한 것에 대해서도 이 후보자는 반발했다. 동아일보는 이 후보자가 서울남부지법원장 시절 “능력 있는 법관이 어렵고 힘든 재판을 맡는 것이 맞다”며 사무분담위원회 설치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 후보자는) 법원장 회의 등에서도 법원장 추천제 등을 비판한 적이 있다”며 “대법원이 판사들을 방임하고 있다는 시각인 듯하다”고 전했다.
다만 과거 체제로 되돌아갈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동기 부여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 재판 처리를 독려할 듯하지만, 판사를 획기적으로 증원하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라며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도를 부활시키기도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한 고법 부장판사 역시 “옛날의 판사들처럼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승진 구조를 다시 만들어서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보다 물적·인적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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