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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희비극의 범죄인 시장…사색 없이 사형, 사형 [본헌터⑮]

등록 2023-08-14 10:03수정 2023-08-14 10:24

[역사 논픽션 : 본헌터⑮] 재판관의 고민
재판받고 극형 당해도 억울했던 부역자 심판…재판조차 안 받은 백배, 천배의 사람들은
부역자 재판을 받기 위해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맨 오른쪽 사람의 ‘완장’이 두렷하다. 사진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부역자 재판을 받기 위해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맨 오른쪽 사람의 ‘완장’이 두렷하다. 사진 한국전쟁 사진의 역사사회학

*편집자 주: ‘본 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흐흑.”

검사가 사형을 구형하자 부녀자들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울음은 참회의 눈물은 아니었다. “하도 더러운 세월을 만나서 이렇게 죄를 뒤집어썼구나” 그 이상의 것을 엿볼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나는 무죄 언도를 내렸다. 이번에는 부녀자들이 전보다 오히려 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방청인들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마치 무엇인가를 묵상하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아해들이 발발 떨면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하던 그들이 당장 그날 밤 각기 집에 가서 어린 자식의 현모가 되어주는 모습을 그렸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창조하여 낸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론에 끌려가지 말고 여론을 인도하자고 한 생각이 옳았다. 너무나 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은 모두 무죄를 언도했다. 그날도 가벼운 걸음으로 어두컴컴한 길을 지나 집으로 향하였다.

내 이름은 병진이다.

1950년 6월25일 전쟁이 터지고 3일 뒤인 28일 한강을 건너 부산까지 갔다. 그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전까지 부산지방법원 판사 직무대리로 일했다. 3개월 만에 돌아온 중추(中秋)의 서울 창공은 구름 한 장 볼 수 없이 새파랗고 높은데, 재가 돼버린 벌판의 거리는 황폐하고 처참했다.

신당동 집에 가보니 세 살짜리 규성이가 세상을 떠나 있었다. 출근할 때마다 2층에서 내려다보면서 애교 있게 “안녕! 안녕!” 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정동의 서울지방법원에 출근했다. 판사실의 절반은 비어있었다. 우리 정부와 지도자들을 신뢰하고, 서울시가 그처럼 손쉽게 떨어질 줄 몰랐던 그들. 북한이나 만주로 끌려갔거나, 혹은 원한을 품은 채 학살을 당하였을까. 아, 만고의 역적, 김일성 도당. 놈들에게 아부하여 부역한 자는 누구였던고. 놈들도 필경은 김일성 도당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 원수! 아 보복!

모든 수사기관에서는 부역자 일제 검거에 착수했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불과 한 달 만에 1만여건이나 검거했으며 이에 대한 군법회의의 심판도 시작했다. 비상계엄 하였던 관계로 원칙상 부역범 처리는 군법회의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격증한 사건을 2개월간의 군법회의에서 짧은 시일 내에 처리하기는 어려웠다. 비교적 경미한 것들은 재판소로 이관했다 이리하여 나는 법원에서 부역자 처리라는 중대한 책임을 부담하게 됐다. 10월 말경 드디어 부역자 재판이 시작됐다.

검사는 사형 구형을 남발했다. 나는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판사로서 철학이 있다. 재판이라는 것은 사실과 맥락에 대한 사색으로부터 시작해 사회적 압력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야 소신을 지킬 수 있다. 물론 부역자 처리는 보통 고민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이 민족의 근본문제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부역범을 처벌하려고 만든 ‘비상사태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특조령)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민족을 해치는 어마어마한 법이었다. 단독판사, 단심제에 단시간내 처리라니. 아무리 서울 탈환 직후 “부역자는 종자를 말려버리겠다”는 외침이 도처에서 터져나오는 초과도기적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밥맛이 사라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재판이라고 하면 충분한 심리를 하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법관의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요, 극형조치만이 타당할 수는 없다. 즉, 확신 없는 형식적 심리만을 거쳐서 일률적으로 엄벌에 처하는 것은 재판이 아니고 행정조치에 불과할 뿐이다. 일찍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러한 절대권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재판을 해야만 했다.

하루는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만 14살 홍안의 소년이 피고인으로 끌려왔다. 검사는 “괴뢰군이 입성하자 소위 내무서에 근무하며 그들을 조력하고, 내무서원들에게 우익인사의 가옥 등을 안내해서 그들을 살해케 했다”고 기소 내용을 밝혔다. 심리한 결과 소년은 “인민군이 입성한 뒤 어느날 동네 파출소 앞을 지날 때 그 안에서 내무서원이 나와 “야, 너 똑똑하구나. 매일 여기 와서 심부름을 하여라”하고 끌어가기에 그 뒤부터 관계인의 호출 전달, 청소, 심부름을 했던 것이요, 어느날 누군가의 집이 어디냐 묻기에 두세 사람의 집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이 어린 소년에게 부역죄의 책임을 지우기에는 너무나도 고려의 여지가 많았다. 나는 무죄를 언도했다.

법원 주변은 마치 범죄인 시장 같았다. 각 법정에서는 사형, 무기, 십오년형, 십년형의 실형 언도가 있는가 하면, 무죄 언도도 속출되었다. 그리하여 인생의 가장 큰 희비극이 매일같이 여기에서 연출되었다. 그 희비극의 현장에서 나를 가장 전율하게 한 사건의 피고인은 인민위원장의 부인이라는 여인이었다. 마흔살가량의 이 여인은 인민군이 입성하자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모월모일 모 경위를 밀고하여 피살케 하였다는 것이었다. 인근의 주민들은 이 여자가 가장 악질이었다며 총살을 희망한다고 했다. 순경의 보고서 기록에는 피살된 경위의 부인에 대한 검사의 증인신문조서까지 첨부돼 있었다.

조서에 따르면 “남편이 다른 집으로 피신하여 다니던 차에 어느 날 우연히 집에 돌아와 있었는데 우리 집과 나란히 있는 집에 사는 피고인이 이러한 동정을 창밖으로 보고 탐지하여 내무서에 밀고했고 남편이 그날 밤 행방불명됐다”는 거였다. 증오심을 자아낼만한 죄상이었으나, 밀고의 방법은 나와있지 않았다.

공판이 시작되자 피고인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여맹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그 경위의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경위의 부인을 소환해 물었더니 “남편이 2층에 있었는데 2층방이 모두 유리창이라 밖에서 환하게 들여다보이고, 낮에 그곳에 있었으니 피고인이 잘 보았을 것으로 의심된다”는 거였다. 이 증언 하나뿐이었다. 나는 인근 주민에 대해 탐문조사를 하고 가옥의 위치를 검증했다. 확실한 것은 피고인의 남편이 빨갱이라는 것뿐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그 사람이 절대 그럴 리 없다”면서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또한 피고인의 집과 피살된 경위의 집은 실제로 나란히 있었으나 두 집의 방들은 시장건물에 둘러싸여 판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두 집에서 보이는 건 판벽뿐이니 아예 맞은편 집을 볼 수조차 없었다.

“무고한 사람을 사형에!”

이런 사실이 발생한다면 사회와 국가는 원성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원한은 백년을 갈 것이다. 1950년 11월8일까지 단독판사, 단심제로 단시간내 처리한 부역자 재판을 통해 1298명이 사형 집행됐다. 이 중에는 억울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같은 기간 심문과 재판조차 받지 않고 처형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아마도 재판받고 사형집행된 수의 백배, 천배가 될지도 모른다. 그 원성과 원한은 천년, 만년을 갈 것이다. 최소한 재판이라도 받았으면 덜 억울했을까.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 이 글은 유병진 판사가 쓴 <재판관의 고민>(신동운 편저, 법문사, 2008)과 <신태양> 1957년 7월호에 실린 같은 제목의 기고문을 발췌, 재구성해서 작성했습니다. 출판사와 편저자의 허락을 얻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맡고 있다.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군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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