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논현역에서 가스테러와 난동범 오인 신고가 들어와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가 찰과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은 출동한 경찰관과 소방대원이 현장을 수습하는 모습. 연합뉴스
잇따른 무차별 흉기 난동에 수십건의 온라인 살인 예고 글이 계속되고, 관련 정보가 에스엔에스(SNS) 등을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집단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열차에서 발생한 테러 오인 신고는 시민들이 집단적 패닉에 빠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스 냄새가 난다” “사람들이 뛰어다니면서 넘어진다” “역사 안에 난동범이 있다” 등의 신고가 이어지자 열차는 신논현역에서 정차했고, 승객들이 급히 내리려는 과정에서 뒤엉켜 7명이 다쳤다. 당시 열차 안에는 벗겨진 신발과 가방 등 소지품 등이 나뒹굴었다. 경찰 관계자는 “누군가 소리를 지르자, 고성을 들은 옆 칸 승객들이 영문도 모른 채 대피하기 시작했고, 흉기 난동이라는 루머까지 번졌지만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과 5일에도 서울 구로구 개봉역과 경남 사천시 등에서 난동범 신고가 들어와 승객·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오인 신고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잇단 흉기 난동 사건과 살인 예고 글 등으로 시민들의 ‘불안 역치(반응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자극)’가 크게 낮아졌다고 보고 있다. 실제 지난달 21일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수사기관은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온라인 살인 예고 글은 계속되고 있다. 7일 오후 6시 현재 경찰은 살인 예고 글과 관련해 194건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65명을 검거하고 3명을 구속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비슷한 성격의 사건이 짧은 시간 안에 반복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트라우마는 재난 수준”이라며 “신논현역 소동도 이런 집단적인 트라우마로 인한 사례로 보인다”고 말했다.
범행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믿었던 다중밀집지역에서 발생하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실질적 공포는 더욱 크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아무개(44)씨는 “신논현역 사고를 봤는데, 도망친 승객들의 심정이 너무 이해된다. 이태원도, 오송 지하차도도 마찬가지였는데, 위험에 민감해지지 않으면 정말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아무개(24)씨도 “혹시 몰라 길을 다닐 때는 이어폰을 빼고 다닌다. 칼부림 예고가 뜬 장소 근처나 사람 많은 곳에 가길 꺼리게 됐다”고 했다. 김태경 서원대 교수(상담심리학)는 “이번 범죄는 ‘운이 나쁘면 얼마든지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적합한 사건이었다”며 “게다가 그런 사건이 반복되면서 점점 같은 사고가 또 반복될 수 있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보가 쉽고 빠르게 퍼지는 에스엔에스 기반 환경 역시 시민 불안을 가중하는 요소다. 서울시 신림동과 성남시 서현역 두 차례 흉기 난동 사건 모두 혈흔 등 현장 사진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신림동의 경우 범행과 검거 모습이 담긴 인근 가게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이 1분 이내의 짧은 쇼츠 형식으로 사용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노출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인터넷 환경은 아이러니하게 살인 예고 글과 공포가 확산되는 통로 노릇을 하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1990년대에도 광장에서 자동차로 이뤄지는 무차별 범죄가 있었지만, 지금은 소셜미디어 사회이다 보니 가이드라인도 없이 정보가 마구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여론을 만드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범죄자에게 용기를 주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며 “범죄자들은 자신이 올린 글의 파장을 보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불안을 반영하듯 살인 예고 글과 검거 여부를 알려주는 ‘테러레스’(terrorless)라는 사이트도 생겼다. 대학생 4명으로 구성된 커뮤니티 ‘공일랩’(01ab)은 “무책임한 살인 예고 글에 대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해 불안감을 덜어주고 싶었다”며 “서비스가 종료돼 안전한 사회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범죄 현장 사진과 동영상에 대한 노출을 자제하라고 조언했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은 “사건 사진이나 동영상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면 예민해지고 불안정해질 수 있다”며 “관련 노출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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