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건물 입구에 많은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스티커와 조화가 놓여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아이 부모가) 주말에도 전화를 걸어와 ‘(아이가) 자전거를 위험한 곳에서 타지 못하게 얘기해달라’고 여러 번이나 말씀하셨다.”
15년차 초등학교 교사 김아무개(42)씨는 21일 서초구 초등학교 앞에서 <한겨레>와 만나 “사실상 아이의 양육을 (선생에게)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많다”며 지난해 겪었던 학부모 민원에 대해 말했다. 김씨는 “사소한 민원성 연락이 너무 많다 보니 다른 아이들 가르치는 데 신경쓰지 못하고 학부모 요구만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말 한 번 잘못 섞었다가 아동학대로 문제가 커질 수도 있고, ‘왜 간섭하느냐’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가 학부모와 갈등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학교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일선 교사들의 호소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특히 메신저 등으로 의사소통이 편리해지면서 학부모들이 직접, 자주 민원을 제기하는데, 학교나 교육청 대신 일선 교사가 이를 다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전담 경험이 있는 2년차 중학교 교사 ㄱ씨는 “민원이 1년 365일, 24시간 접수된다. (개인전화로 말고) 학교 전화로만 연락해달라고 하면 ‘학부모에게 항의’한 것이 된다”라며 “간혹 교감이 중간에 민원을 들어주기도 하지만, 선의에 기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소도 2건 당했다. 교육청에 교권 담당 변호사가 있지만, 크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교사는 현재로썬 방어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어리고, 부모도 학부모 경험이 짧은 초등학교가 ‘민원 블랙홀’이라는 토로가 많았다.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아이들 사진을 올려달라’며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달라는 식의 요구가 많다고 한다.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ㄴ씨(30)는 “초등학교 교사는 민원창구”라며 “담임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교무실에서 받아 연결해주기 때문에 (학부모 민원을) 피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심지어 학교 밖에서 일어난 사건도 담임에게 해결해달라고 한다”고 했다.
학교나 시·도교육청이 학부모 편만 든다는 불만도 많았다. 경기도에서 15년차 국어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교사 이아무개(45)씨는 “동료 교사가 사고뭉치인 아이를 줄곧 감싸주다가 아이가 절도까지 저질러 결국 화를 냈더니 학부모가 언어폭력 교사로 신고했다. 명백히 아이의 잘못이 있었지만 교사의 언행만 문제 돼서 결국 그 이후론 담임을 맡지 못했다”라며 “학부모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불합리한 주장을 펼쳐도, 논란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인내’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학부모가 교사 개인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좋은교사운동은 “학교 안에 공식적인 민원 창구를 만들고, 교육활동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를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훈육 과정에서 불거지는 아동학대 논란을 줄이기 위해 ‘행동조정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경우 교사에게 학생 격리 권한을 부여하고, 직접적인 훈육권 행사는 교사가 아닌 별도의 ‘행동조정관’이 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정당한 생활 지도에도 교사들이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하는 일이 많다”며 “이 제도는 교사가 직접 훈계 등의 언행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동학대 혹은 폭력 행사 가능성을 예방한다”고 짚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각 학교에 분쟁조정전문가를 배치하고, 법적 분쟁이 생기면 학교 차원에서 자문 변호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 등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박시은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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