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578-3, 57-4, 578-7 일대. 주황색 지붕있는 집 뒤로 보이는 일대의 땅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대통령 처가의 ‘경기도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양평군 공무원 ㄱ씨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세 가지 노선안을 최초로 제안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노선안을 내놓게 됐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고속도로 건설 과정 등에서 통상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여론’ 등을 들어 특정 노선을 요구하는데, 여론의 실체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의견 수렴 절차가 따로 없어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이 관철될 여지가 높은 게 현실이다.
20일 국토교통부와 양평군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토부는 지난해 7월18일 양평군 등 9개 관계기관에 공문을 보내 서울-양평 고속도로 예비타당성조사 통과안(양서면 종점안·1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양평군은 의견 조회 공문을 받고 8일 뒤에 국토부에 노선안 세 가지를 제시했는데, 이 가운데 ‘2안’의 나들목(강하면 왕창리)과 종점(강상면 병산리·김건희 일가 땅 소재지)이 현재 국토부의 대안 노선과 같다. 세 가지 안을 담은 양평군의 공문은 ㄱ국장이 전결 처리했다. 이런 까닭에 양평군이 제시한 세 가지 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양평군은 공식적인 주민 의견 수렴 절차나 기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고 국토부와 협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양평군 쪽은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군을 관통하기 때문에 주민 교통 편의를 위해 양평군 안에 나들목을 설치할 것을 줄곧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양평고속도로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토부는 양평군과 협의를 앞두고 타당성 조사를 맡은 용역사가 마련한 노선 변경안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계기관에 대한 의견 요청은 용역사가 마련한 노선안과 별개로 이뤄진다”고 말했고, 양평군 관계자도 “국토부가 어떤 힌트도 주지 않아 (국토부가 변경안을 내부 검토 중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양평군은 2안을 제시하게 된 이유로 줄곧 지역 주민들이 ‘나들목 설치’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해왔다. 또 강하면 왕창리에 나들목을 둠으로써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확장 공사 중인 군내 국지도 88호선과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연계성을 확보할 수 있어 2안을 마련했다고도 했다. 종점을 강상면으로 제시한 것은 2018년 발간된 ‘양평군 2030 기본계획’(장기 행정 로드맵)에 담았던 노선안을 참조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양평군은 나들목을 강하면 운심리에 두고 종점을 예타안과 같은 양서면으로 하는 1안에 대해서는 ‘예타안 준용 차원’이라고 밝혔다. 양평군 관계자는 “당시 우리로선 국토부가 2안을 적극 검토해주길 바랐지만, 2안이 예타안과 너무 달라서 안 된다고 할 경우를 대비해 1안을 제시한 것”이라며 “1차 관계기관 협의 당시 1~3안은 모두 수평적”이라고 말했다. 1~3안에 대한 특별한 선호는 없었다는 얘기다.
현재 관련 법령에 따르면 국토부는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관계기관 협의와 주민설명회 등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이와 달리 양평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국토부에 의견을 제시하기 전 주민 의견을 수렴하게끔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이런 빈틈을 활용해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요구” 또는 “민원”이라는 핑계를 대고 자치단체장이나 정치인, 특정 개인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양평군이 제시한 강하나들목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 의견은 엇갈리고 있지만, 양평군은 ‘지역 여론’을 들어 강하나들목 설치를 강하게 요구했다. 한 사회기반시설(SOC) 설계 기술사는 “지역 유력 인사나 국회의원 등의 입김 등이 끼치지 않는 에스오시 사업을 찾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진선 양평군수는 이날 <한겨레>와 만나 강상면 병산리 종점안을 포함한 세 가지 안은 “저의 판단이었다”고 했다.
최하얀
chy@hani.co.kr 이승욱
seugwookl@hani.co.kr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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