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경북 경산시 평산동 산42-1 코발트광산 갱도 안에서 발굴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수습 결과, 1000점 이상의 유해 조각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전체 희생자 수는 18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18일 59차 전체위원회에서 코발트광산 유해수습 관련 용역기관인 한빛문화재연구원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경산코발트 광산 희생자 유해수습 최종보고’를 받았다고 19일 밝혔다. 연구원이 지난 3월23일부터 경북 경산시 평산동 산42-1 코발트광산 수평갱도에서 15년 만에 재개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수습 결과 1048점의 유해 조각이 나왔다.
1기 진실화해위와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등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이곳 광산의 제1·2 수평갱도, 제1 수직갱도, 대원골 일대 등에서 네 차례의 유해발굴을 해 394구의 유해를 수습한 바 있다. 갱도 내에는 2008년 조사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15㎏ 마대 기준 4000포대가 보관돼 있었다. 이 안에 유해 조각이 섞여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올해 자체 예산 8250만원과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8500만원 등 총 1억7000여만원을 들여 광산 갱도 내에 있던 1000포대(15t)를 반출해 정리 작업을 했다. 그 결과 1048점의 인골 조각과 12점의 유품을 수습했다. 수습된 인골 조각은 1㎝ 이상의 머리뼈 154개, 치아 51개, 척추 95개, 늑골 247개 등이며 유품으로는 탄피, 버클, 단추가 나왔다.
경산 코발트광산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개업해 금과 은, 코발트를 채굴하던 곳으로 1945년 해방과 함께 폐광됐다. 2009년 11월 1기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문을 보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산·청도·대구·영동 등지에서 끌려온 국민보도연맹원 및 요시찰 대상자들과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중 상당수가 경산·청도지역 경찰과 경북지구CIC(미군 첩보부대) 경산·청도 파견대, 국군 제22헌병대에 의해 1950년 7~8월께 경산시 평산동에 위치한 이 광산에 끌려와 집단 사살당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이 사건의 전체 희생자 수가 18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산 코발트광산에는 아직도 유해가 섞인 2500개 포대 이상의 마대가 남아있다. 수직갱도의 경우 지형과 주변 저수지 등으로 인해 접근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추가 유해 발굴 및 수습 여부는 예산 책정 등 여러 변수들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뒤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진실화해위가 지난 5월24일 55차 전체위원회에서 조사개시 각하 결정을 내렸던 베트남전 하미 학살 사건에 대해 응우옌티탄(66) 등 사건 신청인 5명은 19일 오전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와 장완익·김남주·임재성 변호사가 대리하는 사건 신청인들은 “과거사진상규명법에 따르면 외국인에 대한 외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규정이 없는데도, 진실화해위가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하여 전쟁시에 발생한 사건으로까지 확대되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한 것은 법을 위반한 것으로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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