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충남 공주시 옥룡동 주택가가 이날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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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동안 500㎜의 ‘물폭탄’이 쏟아져 도로 곳곳이 통제됐던 충남 공주시 한 펜션 업주가 소비자의 환불 요청을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 ‘소비자가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다 보니 현실에선 업주와 소비자가 갈등하는 경우가 많다.
15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충남 펜션 호우 재난사태에 환불 불가라는 업주’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을 보면, 글쓴이는 15일 펜션을 이용하고자 했으나 14일 기상 상황이 좋지 않자 업주에게 1차로 환불을 요청했다. 업주는 ‘펜션 규정상 전일, 당일은 전액 환불 불가로 환불이 안 된다’고 거절하면서 다만 “당일(15일) 천재지변으로 펜션을 못 오게 되면 환불해 주겠다”고 글쓴이에게 말했다.
“펜션 진입로는 정상”이라는 업주
공주 지역에는 13일 0시부터 15일 오후 2시까지 485.5㎜의 비가 내렸다. 14일 새벽 4시부터 호우경보가 발효 중이었고 특히 15일에는 금강교와 백제교 일대에 홍수경보가 내려지고 도로 곳곳이 침수나 토사 유출 등으로 통제됐다. 또 아파트 단지 침수로 주민이 대피하는 등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글쓴이가 확인한 15일 아침 공주 지역 재난문자만 10개 이상이었다. ‘통행 불가’, ‘대피 명령’, ‘사고 우려’ 등의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이런 상황을 업주에게 전달하며 15일 2차로 환불을 요청했으나 업주는 본인 펜션에 오는 길은 막힌 곳이 없으니 올 수 있다며, 천재지변이 아니므로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한다. 글쓴이가 첨부한 업주의 문자 메시지를 보면 “(펜션으로 오는 길은) 모든 방향 정상 진입 가능하니 펜션 이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자꾸 천재지변을 말하는데 정부에서 보내는 (재난) 문자는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전 문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온다고 해도 말려야 할 판에…깔끔하게 환불해 주고 다음에 기분 좋게 예약받으면 될 것을”, “천재지변인데 오늘만 장사하고 말 건가 너무한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15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온 충남 공주시 한 펜션 업주의 환불 거부 문자(왼쪽)와 이날 예약자가 받은 재난 문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환불 가능하나 법적 구속력 없어
‘펜션으로 오는 길은 막힌 곳이 없으니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업주의 주장은 공정위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규정에 어긋난다. 해당 규정을 보면 ‘기상청이 강풍·풍랑·호우·대설·폭풍해일·지진해일·태풍·화산주의보 또는 경보(지진 포함)를 발령한 경우’를 기후변화 및 천재지변으로 숙박업소 이용이 불가한 경우로 정하고, 이런 경우 당일 계약을 취소하면 숙박요금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 역시 1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펜션으로의 이동 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져 있다면 소비자는 요금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5일 공주 지역에는 호우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다만 해당 규정은 공정위 고시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보니 업주가 환불 불가 입장을 고수해 소비자와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숙박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총 4732건이다. 지난해에만 1428건으로, 이 가운데 40%가량이 7~9월에 집중됐다.
글쓴이처럼 환불 요구를 거절당한 경우,
거래내역과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정리해 ‘1372 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상담을 받거나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피해 구제 신청을 하면 담당 조정관이 업주와 소비자 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규정 등에 근거해 권고를 한다. 만약 이 단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분쟁조정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위원들의 결정을 양 당사자가 수락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결정을 한 쪽이라도 거부한다면 조정은 불성립되고 이후에는 민사소송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 관계자는 “피해구제, 분쟁조정 등의 절차가 강제성 있는 절차는 아니지만 (천재지변이 발생했다면) 소비자 안전이 더 중요하므로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규정에 의거해 업주에게 환불해줄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