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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밀고 끌고, 영차영차…소똥구리 ‘나 혼잔 못 산다’ [이 순간]

등록 2023-07-17 05:00수정 2023-07-17 07:36

야생 방사 앞둔 ‘지역 절멸’ 소똥구리
소똥구리 암수 한쌍이 소똥으로 만든 경단을 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소똥구리 암수 한쌍이 소똥으로 만든 경단을 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내리쬐는 경북 영양군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원형사육장. 1.3㎝의 소똥구리 부부가 2인 1조로 소똥이 군데군데 놓인 사육장 안을 바삐 움직였다. 암컷이 물구나무 자세로 밀고, 수컷이 당기며 소똥으로 만든 동그란 경단을 굴렸다. 소똥구리 암수는 1시간여 동안 둘레 26m의 원형 사육장을 돌아, 지름 1.8㎝ 경단을 만들어 땅속에 파묻었다. 땅속 경단에 소똥구리 암컷은 알을 낳고, 경단에서 먹고 자란 소똥구리 성체는 4개월 남짓 뒤 경단을 뚫고 땅 위로 올라온다.

경단은 소똥구리가 알을 품는 부화장이자 소똥구리 새끼의 음식 창고가 된다. 왼쪽부터 소똥구리가 만든 경단, 경단 속의 소똥구리 알, 소똥구리 유충의 모습. 박종식 기자
경단은 소똥구리가 알을 품는 부화장이자 소똥구리 새끼의 음식 창고가 된다. 왼쪽부터 소똥구리가 만든 경단, 경단 속의 소똥구리 알, 소똥구리 유충의 모습. 박종식 기자

온 나라 곳곳에서 서식했던 소똥구리는 1970년대 이후 공식적인 관찰 기록이 없이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 곤충이 되어버렸다. 소똥구리는 초식동물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먹이로 삼는데, 농기계가 도입되고 밀집형 공장식 축산이 이뤄지면서 서식지를 잃게 됐다. 게다가 가축의 구충제, 항생제 성분이 남은 분변을 먹고 결국 ‘지역 절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환경부는 “살아 있는 소똥구리 50마리, 5000만원에 삽니다”라는 공고를 내고 국내에 사는 소똥구리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이듬해 국립생태원은 국내 서식 소똥구리와 유전적으로 같은 종을 몽골에서 200마리 들여와 증식에 성공했다. 현재는 400여마리의 소똥구리가 가을 무렵 야생 방사를 앞두고 있다.

경북 영양군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소똥구리 증식실 모습. 박종식 기자
경북 영양군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소똥구리 증식실 모습. 박종식 기자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똥을 굴리는 소똥구리에게 지극히 매료된 나머지 여기에서 태양을 굴리는 신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중략) 그들이 소똥구리의 약간은 역겨운 습성은 제쳐놓고 그 곤충의 기발한 재주나 끈기나 친환경적인 재활용 행태를 찬양했을 것이란 점은 꽤 명백해 보인다.’(리처드 존스 <버려진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와 연관 지어 소똥구리를 신성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유물 중 소똥구리 형상의 반지나 부적을 발견할 수 있고, 왕의 묘지, 비석 등에도 소똥구리 그림을 찾을 수 있다.

소똥구리 성충이 경단 위에 앉아있다. 박종식 기자
소똥구리 성충이 경단 위에 앉아있다. 박종식 기자

이처럼 고대인들의 추앙 대상이자 자연 순환의 중요 고리 구실을 했던 소똥구리가 연구실이 아닌 야생의 목초지에서 경단을 굴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3년 7월 17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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