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시위 자유 보장, 서울시청광장 사용 불허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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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관리와 일정이 중복된다며 민주노총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던 서울시가 올해에만 ‘일정 중복’을 이유로 광장 사용 신청을 7차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개된 일정이 없는 날에도 내부 사정을 들어 광장 신청을 가로막는 것으로 확인돼, 사실상 시의 입맛에 맞는 집회나 행사만 허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사용신청 불승인 내역’을 보면, 2021년 한건도 없었던 불승인 건수는 지난해 11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상반기(6월)까지만 8건에 달했다. 불승인한 8건 중 7건의 신청 반려 사유는 ‘일정 중복’이었다. 이중 5건이 잔디 관리나 행사 부스 설치 등 시 내부 일정이었다.
광장별로 살펴보면, 서울시는 상반기에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 각각 3건·5건씩 사용신청을 불승인했다. 이를 누리집에 공개된 광장 사용 허가신청 일정과 비교해보니, 올 들어 광화문광장에 불승인된 3건 중 2건은 당일 공개된 일정이 없었다. ‘코로나19 및 백신희생자 합동추모식(2월23∼25일)’과 ‘한국여성대회(3월4일)’는 공개된 중복 일정이 없었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내부 일정인 “‘매장문화재 시민공개 사전행사’로 승인이 불가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실제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개행사는 3월16~18일로, 두 행사와 일정이 겹치지 않았다. 시는 사전행사 직전 13일 동안 부스 설치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마저도 합동추모식 날짜와는 겹치지 않았다.
일정이 있는 날은 지난 2월4일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가 유일했다. 당시 서울시는 <한국방송>(KBS)이 먼저 신청한 촬영 일정이 있다는 이유를 댔는데, 촬영 시간은 오전 11시까지로 돼있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이었던 추모제와 시간이 겹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철거에도 시간이 걸려 일정이 겹친다”고 말했다.
모두 5건이 불허된 서울광장에선 이태원 참사 시민추모문화제가 올해 들어 두번 신청됐지만, 2월엔 ‘스케이트장 설치’를 이유로, 5월에는 각종 행사가 많다는 이유로 각각 불허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7월1일)는 다른 청소년 행사가 우선한다는 이유를 들어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 2월 ‘코로나19 백신 희생자 추모 합동분향소’ 설치는 ‘조례상 광장 사용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으로 불수리 됐다. 이달 중엔 잔디 관리를 이유로 두 차례 민주노총의 총파업 집회를 불허했다. 시 관계자는 “공익성 있는 국가·지자체 행사를 우선으로 한다는 조례 조항이 있다. 안전을 위해 한 건의 행사만 허가한다”고 했다.
지자체가 내부 행사 등을 근거로 광장 사용을 불승인하는 것을 두고 사실상 임의로 ‘광장 허가제’로 운영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서울광장 조례에는 다른 행사와 중복될 경우 등에 대해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의결을 거치게 돼있지만, 시는 잔디 관리 일정이 ‘공익 목적 행사’라고 자체 판단해 위원회도 거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은 위원회조차 거치지 않아도 된다.
용혜인 의원은 “집회 허가제는 헌법이 금지하는데, 서울시가 내부 행사 등을 이유로 자체 불허하는 것은 집회 자유의 핵심인 장소 선택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며 “일정이 겹칠 경우에도 경찰과 지자체가 주최 쪽과 적극 조율해 모두 안전하게 분할 개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