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 한 마리가 지난해 8월16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물 밖으로 힘차게 튀어 오르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동물(고래)이 단지 환경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 직접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겁니다.”
김영희 변호사는 9일 <한겨레>에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헌법소원 청구인단에 ‘고래’를 포함시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앞서 지난 3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오는 21일까지 청구인을 모집해 한국 대통령과 관계부처들을 대상으로 “후쿠시마 대응과 관련해 대통령과 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부작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김 변호사는 헌법소원 청구 대리인단 단장이다.
김 변호사는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류는 수많은 바다 생물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할텐데, 우리는 인간의 먹거리로서 수산물의 안전 문제만 이야기하고 있다”며 “‘세슘 우럭’에서 보듯 해양 생태계의 피해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동물들이 받을 고통과 피해를 대표하기 위해 고래를 원고인단에 포함했다”고 했다.
실제 세계 곳곳에선 동물과 환경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콜롬비아 대법원은 2018년 4월, 25명의 청년들이 “아마존 지역의 환경보호 실패로 생명권과 건강권이 침해됐다”며 대통령과 정부기구를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콜롬비아 대법원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마존 강은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그보다 2년 앞서 2016년
콜롬비아 헌법재판소는 카리브해로 흘러가는 리오 아뜨라또(Rio Atrato)강을 법적 주체로 인정했다.
한국에서도 환경보호를 위해 동물을 법적 주체로 내세운 소송이 수차례 제기됐지만, 법원은 동물 등을 권리 침해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2004년엔 경남 양산 천성산 터널 착공과 관련해 환경 단체가 부산지방법원에 공사 금지 가처분을 신청을 하면서 터널 공사로 환경 이익을 침해 받는 ‘도롱뇽’을 소송 당사자로 내세웠지만 1심·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일관되게 “도롱뇽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2018년에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막으려는 소송에 설악산에 서식하는 산양 28마리가 원고로 이름을 올렸다. 해당 소송을 제기한 동물권 연구 변호사단체 피앤알(PNR)은 케이블카 추가 설치로 산양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산양을 원고인단에 포함했으나 서울행정법원은 “산양들은 야생 동물로서 당사자 능력이 없다”며 산양의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사회 분위기 등이 동물에 대해 주체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함에 따라, 민변은 헌법재판소가 전향적인 방향으로 심리를 진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헌법 조문을 보더라도 환경과 자연, 생태계, 생물들까지도 기본권 주체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헌법소원을 통해 기본권의 주체가 동물과 자연까지 넓게 인정 받을 수 있게 판례 변경에 기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말까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헌법소원 청구인 모집은 계속된다. 청구인단 모집글에서 민변은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는 단순한 오염수가 아닌, 원전 사고로 인한 핵 폐기물을 바다에 투기하는 인류 최초의 사례로서 그 안전성에 대해서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며 “한국 정부는 국민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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