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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직 보위’ 구속됐던 검찰 직원…진실화해위, 국가 사과 권고

등록 2023-07-06 08:00수정 2023-07-06 20:32

‘진정서 위조’ 누명 쓴 1991년 이치근 사건
진실화해위는 전 서울지검 직원 출신 이치근씨가 신청한 ‘검사에 의한 불법구금·강압수사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조치 등을 권고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모습.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진실화해위는 전 서울지검 직원 출신 이치근씨가 신청한 ‘검사에 의한 불법구금·강압수사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조치 등을 권고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모습.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30여년전 검사의 불법구금과 강압수사로 전직 검찰 직원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결론내리고 국가에 사과를 권고했다. 검찰조직 보호를 구속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사직을 강요하거나 괘씸죄로 무리한 구속을 감행한 검찰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첫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실화해위는 4일 오후 58차 전체위원회에서 전 검찰 직원인 이치근(62)씨가 신청한 ‘검사에 의한 불법구금·강압수사 등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 조처 등을 권고했다.

사건 신청인 이치근씨는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검) 사건과에서 진정민원 접수담당 업무를 하던 1990년 10월께 같은 검사실 소속 수사관 박아무개씨를 도와 박씨의 뇌물수수와 관련된 진정서를 위조하고 파기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듬해 7월4일 1심에서 그는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검사들로부터 계속 괴롭힘을 받기 싫었던 이씨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박씨는 “담당 검사가 진정서를 가져오라고 했다”고 이씨를 속였고, 이씨는 박씨가 위조한 진정서를 받아 진정 민원 배당 부장검사에게 결재를 올리면서 사건에 얽혔다.

당시 대검찰청과 서울지검 수뇌부는 박씨의 진정서 위조 사건이 드러나자 ‘검찰 공무원의 범죄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조직 전체의 신뢰도가 깎인다며 박씨와 이씨를 입건하지 말고 사표를 받는 선에서 끝내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신청인 이씨는 7일 이상 서울지검 형사2부 검사들에게 불법감금을 당하고 강압수사를 받은 끝에 1991년 4월17일 사직원을 제출했다.

검찰직원의 진정서 위조 사건을 보도한 <한겨레> 1991년 5월2일자 기사. 이 기사가 나가자 기사 자료를 제공한 이치근씨를 괘씸하게 여긴 검찰은 이씨를 긴급구속했다.
검찰직원의 진정서 위조 사건을 보도한 <한겨레> 1991년 5월2일자 기사. 이 기사가 나가자 기사 자료를 제공한 이치근씨를 괘씸하게 여긴 검찰은 이씨를 긴급구속했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취업해 일하던 이씨는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진정서 위조사건 은폐를 취재해 보도하자 1991년 5월1일 긴급구속됐다. 이씨는 수사 과정에서 “이 개새끼” “XX놈”등의 욕설과 “검사를 상대로 싸워봤자 무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사무장 생활도 못하도록 하겠다. 자백만 하면 구형량을 낮춰 주겠다”등의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와 법원행정처, 대검찰청 등의 기록, 신청인과 함께 근무한 검찰 직원 및 검찰 간부, 수사검사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당시 검찰 수뇌부와 형사2부 부장검사의 지시에 따라 형사2부 검사들이 신청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법감금, 재우지 않는 밤샘조사, 폭언과 욕설, 자백강요 등 강압수사와 사직강요, 이에 따른 강제사직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한 신청인에 대한 긴급구속은 위법한 불법구금이라고 보았다.

진정서를 위조하고 신청인 이씨를 속인 박씨도 진실화해위에 “수사검사에게 이씨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수차례 말했음에도 검사들은 ‘무고한 사람(이치근)에게 강압수사를 한 것이 밝혀져 기사화되면 우리들은 다 죽는다’며 ‘신청인이 공범이었다고 진술만 해주면 단순 서류손상 혐의로만 기소하고 위조 범행은 빼주겠다. 말을 안 들으면 중한 구형을 할 것’이라고 협박과 회유를 했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이씨와의 공모를 계속 부인했음에도 수사검사가 당시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찰수사관으로 일하던 내 동생까지 두 차례 불러 수갑찬 형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회유·협박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씨가 공범이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실 배치표를 보면, 사건이 발생한 1990년 10월경 서울지검 검사장은 박종철, 제2차장은 김태정, 형사2부 부장검사는 강탁, 형사제2부 소속 고등검찰관은 신태영이었다. 이씨가 긴급구속된 1991년 4~5월께 당시 서울지검장은 전재기, 제2차장은 김태정, 형사제2부 부장검사는 강탁, 형사제2부 소속 고등검찰관은 신태영, 검사는 강창재였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이런 위법행위를 신청인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처를 하고 범죄사실이 조작된 확정판결에 대해 신청인의 피해와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사건 신청인인 이씨도 곧 법원에 재심을 신청할 계획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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