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 미사를 마친 고 양회동씨의 장례행렬이 21일 오전 노제가 예정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도착했다. 노제를 지내던 중 한 노조원이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양씨는 지난 5월1일 노동절에 분신한 뒤 숨졌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없는 죄까지 뒤집어쓰며 강압적인 수사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무서웠고, 두렵고, 아팠을까요”
윤석열 정부의 노동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씨의 영결식이 열린 21일 오후. 고인의 형인 양회선씨가 유가족을 대표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추모객들 사이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양씨의 형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제 동생의 죽음을 두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 순간 우리 가족들은 동생의 죽음을 들었던 순간만큼,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었다”며 “정권의 말을 들으면 국민이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죽음도 외면받아야 하냐.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협하는 장애물들을 없애주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엄숙히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동료 노동자, 사회 각계 인사 6천여명(주최 쪽 추산)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이 노동절인 지난 5월1일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끝에 숨을 거둔지 50일 만이다. 강원지역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과 노조 전임비 지급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아온 양씨는 유서에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사독재정치의 제물이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흐린 하늘에서 약한 빗줄기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젖은 차로를 가득 메운 동료 노동자들은 ‘열사정신 계승’이라 써진 검은 머리띠를 두르고 “노동탄압 즉각 중단” “열사의 명예회복 유족에게 사과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유가족들의 추모 메시지가 영상으로 공개될 때는 함께 흐느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조사에서 “양회동의 죽음은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장관, 수구언론과 경찰 검찰 등이 합작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부당한 건폭(건설업 폭력배)몰이와 마녀사냥도 없는 저 세상에서 부디 편안히 지내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고인은 (자기 일거리는 없어) 생계를 위해 대출을 받아도, 조합원들의 고용이 행복이었던 사람이었다. 참혹한 건설현장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노동조합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었다”며 “그의 행복이자 자부심이었던 조합원들의 고용은 윤석열 정권에 의해 공갈로, 협박으로 매도당하고 짓밟혔다. 양회동 동지의 억울함을 푸는 길은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 미사를 마친 고 양회동씨의 장례행렬이 21일 오전 노제가 예정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도착했다. 양씨는 지난 5월1일 노동절에 분신한 뒤 숨졌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장례위원장 자격으로 영결식에 참석한 야5당 대표들도 한목소리로 고인의 유지를 잇겠다고 말했다. 양씨는 분신에 앞서 야4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 대표들에게 각각 유서를 남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성실하게 살아온 노동자이자 가장을 죽음으로 내몬 이 정권은 일말의 반성도, 책임도 지지 않았다. 정권의 비정한 인면수심에 분노를 느낀다”며 “노동자들이 공정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향한 열사의 꿈을 저희가 잇겠다”고 했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패륜을 일삼는 원희룡 장관은 즉각 사퇴하고, 노동 탄압 윤석열 정권을 반드시 심판하자’”고 했다.
유가족들과 추모객들은 영결식에 앞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날 오전 8시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미사가 봉헌됐고, 이후 운구 차량이 노제가 열릴 경찰청을 향해 출발하면서 5500여명(주최 쪽 추산)의 추모행렬이 뒤따랐다. 이들은 ‘양회동을 살려내라’ ‘윤석열은 퇴진하라’ ‘건설노조 탄압 중단하라’ 등이라고 써진 만장과 고인을 그린 대형 초상화를 앞세우며 2∼3개 차로를 이용해 4.5㎞를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교통 통제를 위해 행진을 차단한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노제와 영결식을 마친 양씨는 오후 4시께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된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김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