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시 중구 서울역 앞 계단에 한 노숙인이 좁게 난 그늘에 앉아 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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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데 이어 서울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오른 19일.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해달라”는 재난문자가 휴대전화에 도착했지만, 같은 시각 무료 급식을 받으려는 취약계층은 땡볕 아래 줄서기를 피할 수 없었다.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김광양(79)씨는 인근 공원에 나와 무말랭이와 제육볶음이 담긴 무료 도시락을 받아갔다. 김씨는 “3~4평 크기의 쪽방에 사는데 ‘정말 못 견디겠다’ 싶으면 선풍기를 조금 틀곤 하지만, 선풍기가 낡아 오래 틀어 두면 열이 나서 오히려 더 덥다”며 “차라리 바람이 부는 공원이 낫다”고 말했다.
마가의다락방교회는 이날 도시락 150개를 준비해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에게 나눠줬다. 이들에게 도시락과 물을 나눠주던 이정숙(67)씨는 “도시락 나눠드리면서 음식이 상할까 봐 ‘빨리 드시라’고 권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7∼8월 동안 너무 더워서 한 달 동안 쉬었는데, 올해 더위가 너무 빨라져서 고민이다”라고 했다.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공원에서 더위를 피해 쉬고 있는 주민들. 곽진산 기자
오전 11시께 서울 영등포구 급식소 ‘토마스의 집’ 앞에도 수건이나 신문을 덮어쓴 채 50여명이 줄지어 있었다. 시원한 수박과 냉커피, 냉국이 이들을 기다렸다. 맨 앞 줄에 선 ㄱ씨는 “200원만 내면 밥과 반찬이 알차게 나온다. 밥이 유독 맛있어서 덥지만 일찍부터 기다렸다”고 말했다. ㄱ씨는 땡볕을 피하느라 급식소와 멀찍이 떨어진 다리 그늘 아래 대기하다가, 시간이 되자 인솔자를 따라 입장했다.
야외 노동자들도 때이른 더위에 땀방울을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전 10시께 영등포구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만난 주차요원 양아무개(26)씨는 햇볕을 막기 위해 설치된 파라솔 아래 서 있었다. 하지만 파라솔이 더위까지 막아주진 못했다.
매연을 가리려 마스크까지 착용한 그의 체감기온은 더 높을 터였다. 양씨는 “그나마 차가 많이 없을 땐 옆에 있는 이동식 에어컨에 등을 대면서 더위를 쫓는다”고 말했다.
주거취약층이 모여 사는 곳은 얼마나 신경을 썼느냐에 따라 사정이 갈렸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은 집 외벽마다 인공 안개를 만들어 주변 공기를 냉각시키는 ‘쿨링포그’가 설치돼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분사되는 찬 수증기 덕분에 골목에선 냉기가 돌았다.
쪽방촌 주민 ㄴ씨는 “(쿨링포그가 설치돼서) 너무 좋다. 냉기가 집으로 들어오니 집마다 문을 열어 두고 있다. 더위 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반면 지난 1월 명절을 앞두고 화재를 입은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주민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와 씨름하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구룡마을 4지구에는 현재 주민 20여명이 천막 8동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구룡마을 주민 ㄷ씨는 “낮에는 더워서 천막 안에 못 있는다. 시원한 곳 찾아서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나간다든지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현장에선 빨라진 폭염에 맞춰 지자체도 관련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전날 7~8월 밤더위 대피소를 운영하고, 목욕이용권을 확대하는 등 취약계층 폭염대책을 내놨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이미 6월 초부터 3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시작됐음에도 지난 5월부터 대책 마련하겠다고 나선 서울시가 폭염 취약계층 지원을 7월부터 시작하겠다고 하는 건 너무 늦은 대응”이라고 말했다.
19일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한 건설현장에서 폭염에 대비해 노동자들에게 얼음물을 나눠주고 있다. 건설노동자 ㄱ씨 제공
19일 오전 10시께 서울 영등포구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앞에서 만난 주차요원 양아무개(26)씨. 김가윤 기자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4지구. 지난 1월 발생한 화재로 현재 20여명의 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19일 오전 11시께 서울 영등포구 사랑의 급식소 토마스의 집 앞에 5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김가윤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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