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스포츠는 만국 공통어…“좌충우돌해도 축구로 쉽게 통해”

등록 2023-06-08 07:00수정 2023-06-26 22:48

[한겨레 창간기획] 이주시대, 스포츠로 경계를 넘다
④ 뉴질랜드의 이주민 스포츠 정책
뉴질랜드 오클랜드 하버스포트의 ‘액티브아시안’ 여성 권투교실 수강생들이 글러브를 끼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버스포트 인스타그램 갈무리
뉴질랜드 오클랜드 하버스포트의 ‘액티브아시안’ 여성 권투교실 수강생들이 글러브를 끼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버스포트 인스타그램 갈무리

“처음에 ‘헬로’(hello)라는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북부 올버니에 있는 이스트코스트베이스(2부 리그) 축구팀의 김대욱(36) 플레잉코치는 낯선 이국에서 이주민이 겪는 초기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포항 유스 출신으로 케이(K)리그에서도 뛰었던 김 코치는 2014~2018년 1부 명문 오클랜드 시티 FC에서 활약했고, 이후 국내로 복귀한 뒤 부인과 함께 뉴질랜드 이주를 결심했다. 그는 “원래 뉴질랜드에 살았던 아내의 도움으로 남들보다는 쉽게 정착했다. 하지만 축구를 하지 않았으면 뉴질랜드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100% 확신한다”고 했다.

김대욱 이스트코스트베이스 프로축구팀 플레잉 코치.
김대욱 이스트코스트베이스 프로축구팀 플레잉 코치.

2년 전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한 뒤 지난겨울 가족과 함께 이주한 김태호(33) 역시 이스트코스트베이스의 중앙 수비수로 이주민 초년기를 보내고 있다. 그도 “인천에서 뛰었을 때 외국인 선수가 불편해할까 봐 국내 선수들 모임에 끼워주지 않고, 정한 규칙을 어겨도 벌금을 받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역차별이다. 여기서 다양한 인종과 어울리면서 좌충우돌하지만 축구를 하기 때문에 쉽게 통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만국 공통어인 스포츠가 아시아 이주민한테는 익숙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물리·화학 등 의대 진학에 필요한 5개 과목을 ‘아시아 파이브’라고 부르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말 속에는 주로 학업에 열성을 쏟는 아시아 이주민들의 태도가 들어 있다.

오클랜드 올버니의 지방체육회 성격의 ‘하버스포트’에서 아시아 이주민을 위한 ‘액티브아시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앨빈 청은 자신의 업무를 “아시아 이주민들을 운동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클랜드에는 뉴질랜드로 이주한 아시아 사람의 절반이 넘는 44만명이 모여 산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온 아시아 이주민의 이미지는 돈은 많으나 운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고 설명했다.

앨빈 청 하버스포트 ‘액티브아시안’ 개발 관리자.
앨빈 청 하버스포트 ‘액티브아시안’ 개발 관리자.

하버스포트는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2009년부터 인구 센서스 등의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아시아 이주민들의 스포츠 활동 욕구나 장애 요인을 분석한 뒤 지역의 클럽과 연결하거나 적절한 강좌를 개설해 스포츠 활동을 하도록 돕는다. 2018년부터 업무를 담당해온 청은 “오늘 저녁에도 지역의 유명한 글렌필드 럭비클럽을 방문해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액티브아시안 프로그램 설명회를 할 예정이다. 부상 걱정이 적은 태그럭비 등의 사업에 글렌필드가 코치와 장소 등을 제공해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하고 설득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하버스포트의 ‘액티브아시안’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이 활짝 웃고 있다. 하버스포트 인스타그램 갈무리
뉴질랜드 오클랜드 하버스포트의 ‘액티브아시안’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이 활짝 웃고 있다. 하버스포트 인스타그램 갈무리

노력은 결실을 맺어, 지난해 한국 어머니들을 위한 요가교실 등 액티브아시안의 여러 프로그램을 거쳐 간 수강생은 5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버스포트에서 출발한 액티브아시안 프로그램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오클랜드의 4개 지역체육회가 모두 액티브아시안 사업을 펼치는 등 오클랜드 전역으로 확대됐다.

하버스포트가 아시아 이주민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은 “나도 홍콩 출신 이주민으로 지금은 뉴질랜드 국민, 즉 키위(뉴질랜드 사람)다. 그런데 홍콩과 뉴질랜드 두 개의 정체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 모국을 기억하는 것과 뉴질랜드인이라는 자긍심이 모순되지 않는 것은 행복한 삶이 나에게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통해서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사회적 측면에서도 스포츠 활동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4살 때부터 뉴질랜드에서 성장해 이스트코스트베이스 프로축구팀에서 뛰는 장윤성.
4살 때부터 뉴질랜드에서 성장해 이스트코스트베이스 프로축구팀에서 뛰는 장윤성.

4살 때부터 뉴질랜드에서 거주했고 현재 이스트코스트베이스의 공격수로 활동하는 장윤성(19)은 스포츠를 바라보는 한국과 뉴질랜드의 시각 차이를 제시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는 5살 때부터 학교에서 교과를 통해 스포츠가 생활의 한 부분이 되도록 한다. 선수들도 과학, 예술 분야의 뛰어난 학생과 똑같이 존경과 관심을 받는다. 학교 축구선수로 지역이나 국가의 대표로 출전하면 교복의 주머니나 옷깃에 띠를 덧대도록 허용해 특별한 학생으로 보이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운동 능력이 문화·사회적 자본이 되니, 선수가 되면 학생회 활동 참여나 리더십 발휘를 하기가 쉬워진다.

물론 이주민 스포츠 활동 강화는 지역별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다. 남섬의 오타고 지역의 제임스 네이션 스포트오타고 시이오(CEO)는 “오타고 지역에는 오클랜드처럼 다양한 이민자 집단이 없다. 마이너리티(소수자)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학교나 지역 스포츠 등 기존의 방식을 통해 생활 스포츠의 확대를 꾀한다. 몇년 전 시리아 난민이 들어왔을 때 그들을 위해 스포츠 행사 기획을 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스포츠를 통해 아시아 국가와의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뉴질랜드 내부를 향해 자극을 주는 경우도 있다. 자국민의 아시아 탐방과 문화 이해를 위해 경제, 예술, 스포츠 등 9개 부문별로 지원사업을 펴는 ‘아시아 뉴질랜드 파운데이션’이 7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개막하는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지역 스포츠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한 예다.

커스티 샤프 아시아 뉴질랜드 파운데이션 스포츠 자문관.
커스티 샤프 아시아 뉴질랜드 파운데이션 스포츠 자문관.

커스티 샤프 아시아 뉴질랜드 파운데이션 스포츠 자문관은 “한국 팀은 호주에서 경기하지만 베트남, 필리핀, 일본 팀은 뉴질랜드에서 조별리그를 치른다. 이들의 방문 기간에 이주민들이 여는 음식주간이나 춤, 공연 등 나라별 특성에 맞는 축제를 지자체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 사이의 교류에서 스포츠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스포츠 단체들이 재정 확보를 위해 후원자를 찾는 것은 늘 최우선 과제다. 하버스포트의 액티브아시안 관리자인 청은 “사람들은 돈을 내고 싶어 하지 않기에, 우리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액티브아시안 프로그램의 경우 ‘뱅크 뉴질랜드’가 많이 후원하는데, 75%만 충당되기에 나머지는 적자”라고 했다. 하키 올림픽대표선수 출신인 네이션 스포트오타고 시이오도 “뉴질랜드 전체 조직인 스포트뉴질랜드의 재정지원은 30%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조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열정으로 헌신해온 청은 “상위 조직인 스포트뉴질랜드가 여성이나 청소년, 마오리족 등을 위해 많은 사업을 하지만, 뉴질랜드가 좀 더 포용적인 사회가 되려면 아시아 이주민들의 스포츠 활동 지원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클랜드 오타고/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김해공항서 에어부산 항공기에 불…176명 모두 비상탈출 1.

김해공항서 에어부산 항공기에 불…176명 모두 비상탈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윤석열 “계엄이 왜 내란이냐” 2.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윤석열 “계엄이 왜 내란이냐”

‘강제동원’ 이춘식옹 별세…문재인 “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 것” 3.

‘강제동원’ 이춘식옹 별세…문재인 “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 것”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4.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서부지법, ‘윤석열 영장판사 탄핵집회 참석 주장’ 신평 고발 5.

서부지법, ‘윤석열 영장판사 탄핵집회 참석 주장’ 신평 고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