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4일 오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55차 전원위원회가 열리는 대회의장 앞에서 ‘베트남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회원들이 하미 사건 조사 개시를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김광동 위원장(오른쪽)이 회의실로 입장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가 보낸 베트남전 하미 사건 조사개시 각하 결정 통지서를 받은 시민단체가 “진실화해위 각하 사유는 위법하고 반인권적이며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진실화해위의 이번 결정 통지문은 2019년 국방부가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회신한 내용에도 못 미친다”는 비판도 나왔다.
31일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베트남 네트워크)가 공개한 진실화해위의 결정 통지서를 보면, 신청인의 조사개시 요구 취지를 인용한 부분이 절반에 이르고 나머지는 해당 안건이 ‘진실규명의 범위’를 규정한 진실화해위 기본법 2조1항4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 뿐이다. 이후 이의신청 방법만 안내돼 있다.
해당 법 2조1항4호가 규정한 진실규명의 범위는 “1945년 8월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이다.
베트남 네트워크는 “1968년에 발생한(시적 범위 해당), 한국군의 작전수행과정에서의(공권력 해당), 민간인학살 의혹사건(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은 위 진실규명 범위에 정확히 해당한다. 그럼에도 진실화해위는 법률 그 어디에도 없는 ‘외국’, ‘외국인’, ‘전쟁시’와 같은 임의적 기준을 들어 법이 정한 의무를 방기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진실화해위가 인권침해 조사 확인 기관이라는 소명을 내팽개치고, 오히려 민족을 이유로 차별함으로써 학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네트워크 쪽은 2019년 국방부가 피해자들에게 보낸 회신문보다 성의 없는 진실화해위 답변에 실망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9월 하미를 비롯한 베트남전 피해자들이 청와대에 한국군의 학살과 관련한 진상규명 조사와 피해회복 조처를 요구한 청원과 관련해 국방부는 “피해자들의 사연을 검토하며 깊이 공감하였고, 대통령도 2018년 베트남 방문시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회신문에서 피해자를 배려하는 태도를 보였다. “역사적 사실 확인을 위해 베트남 당국과의 공동 조사가 선행돼야 하나, 양국간 공동조사 여건이 아직까지 조성되지 못한 상황”을 들어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은 들어줄 수 없다고 밝혔지만, 국방부조차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려는 태도를 보였던 것과 비교된다는 것이다.
베트남 네트워크 관계자는 “독립적인 조사기관인 진실화해위가 하미 사건의 가해책임과 관련된 국방부보다 못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실화해위 결정 통지서가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가고, 외교적 역할도 한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며 “24일 각하결정 이후 진실화해위의 결정통지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받아본 통지서 내용이 너무 형식적이고 행정적 차원의 내용이라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1968년 2월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135명이 죽은 하미 사건의 응우옌티탄(66) 등 신청인들과 베트남 네트워크는 진실화해위의 결정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25일 베트남 신청인 등에게 보낸 하미 학살 조사 개시 안건 각하 결정 통지문.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 제공.
2019년 9월 국방부가 베트남 피해자 103명에게 보낸 청원 회신문.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 제공.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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