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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피아비 “당구로 삶 달라져…이주여성들, 스포츠로 당당 되찾길”

등록 2023-06-01 05:00수정 2023-06-26 22:49

[한겨레 창간기획] 이주시대, 스포츠로 경계를 넘다③
스롱 피아비가 2022년 6월26일 경북 경주 블루원리조트에서 열린 프로당구 시즌 개막전 결승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프로당구협회 제공
스롱 피아비가 2022년 6월26일 경북 경주 블루원리조트에서 열린 프로당구 시즌 개막전 결승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프로당구협회 제공

스롱 피아비(32·블루원리조트)는 스포츠로 삶을 바꾼 대표적인 이주여성이다. 스무살이 되던 2011년 결혼해 한국에 온 그는 남편 권유로 당구를 시작했고, 금세 재능을 보였다. 노력 끝에 결국 프로 선수가 된 피아비는 당구봉을 잡은 지 12년 만에 조국 캄보디아에서 열린 2023 동남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3쿠션)을 목에 걸었다.

피아비는 다른 이주여성들도 당구를 비롯한 스포츠에 도전하길 권했다. 지난 22일 경기도 수원 연습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제가 외국인이라고 무시하고 낮게 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당구 덕분에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게 됐다”며 “다문화 여성들이 당구에 관심을 갖고 연습도 하면 좋겠다. 그래서 당당함을 되찾길 바란다”고 했다.

실제로 피아비는 이주민이 스포츠를 즐길 권리에 관심이 많다. 특히 당구는 그가 가장 추천하는 종목이다. 2019년에는 서울·경기지역 이주민을 위한 당구 아카데미를 열고 직접 강의도 했다. 당시 아카데미에는 피아비 같은 이주여성을 포함해 이주민 총 10명이 참가했다. 그는 같은 해 이주 배경 가정이 참가하는 배드민턴 대회를 찾아 축사하고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스롱 피아비(오른쪽)가 2019년 8월24일 경기도 수원 빌링코리아 아트홀에서 열린 ‘빌링&amp;피아비 다문화 자선당구 아카데미’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이주여성을 지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롱 피아비(오른쪽)가 2019년 8월24일 경기도 수원 빌링코리아 아트홀에서 열린 ‘빌링&피아비 다문화 자선당구 아카데미’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이주여성을 지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쁜 일정 속에서 피아비가 틈틈이 주위를 챙기는 이유는 “단순히 당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한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피아비는 “유명해지면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봉사활동도 한다. 특히 당구를 통해 하는 일이 많아졌다”며 “누군가는 ‘당구 연습이나 하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당구를 통해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삶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피아비는 “나는 그냥 시골에서 감자를 캐던 소녀였다”며 “한국에 와도 평범하게 살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해 다른 사람과 기쁨을 나누는 경험은 그의 인생 항로를 바꿨다. 피아비는 “한국은 스포츠가 정말 많고, 사람들이 함께 응원도 한다. 그 모습이 너무 부럽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당구 자체도 많이 알게 되면 좋겠지만, 당구를 통해 삶에 대해 알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스롱 피아비(왼쪽 둘째)가 2019년 10월3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제10회 전국 다문화가족 배드민턴 대회’에서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스롱 피아비(왼쪽 둘째)가 2019년 10월3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제10회 전국 다문화가족 배드민턴 대회’에서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피아비가 운영하는 당구 아카데미는 현재 문을 닫았다. 피아비는 “당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은 정말 많았는데, 제가 혼자서 가르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피아비는 이주여성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권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부끄럽고, 혼자 다니고 하는 게 자신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래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디든 가서 연습을 시작하길 바란다. 한국에는 당구장이 참 많다”고 했다.

이번 동남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피아비는 캄보디아에서 국민 스타가 됐다고 한다. 피아비는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느낌”이라며 “캄보디아에서 만난 젊은 여성들이 나를 보면서 ‘언니 덕분에 희망을 얻었다’며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기쁨의 미소와 감격의 눈물을 오가던 그는 “다른 다문화 여성들도 스포츠를 통해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피아비는, 그렇게 ‘제2의 피아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원/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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