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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택치료 급한데…“보건소 간호사는 소독만 해도 불법”

등록 2023-05-29 05:00수정 2023-05-29 10:16

서울성모병원 가정간호센터 소속 간호사가 최근 거동이 불편한 환자 가정을 방문해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모습. 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성모병원 가정간호센터 소속 간호사가 최근 거동이 불편한 환자 가정을 방문해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모습. 서울성모병원 제공

김원석(가명)씨는 중풍으로 다리가 마비된 80대 아버지를 집에서 돌보고 있다. 최근 그는 집 근처 장기요양기관에 방문간호를 신청하려다 포기했다.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방문간호사가 집에 찾아와 환자를 보려면 의사의 ‘방문간호 지시서’를 받아야 하는데 아버지를 치료했던 요양병원 등이 서류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그런 제도를 알지 못한다”거나 “외부 기관 간호사의 처치 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이유를 댔다. 간호사를 부르지 못한 김씨는 비위관(약물이나 영양 투여를 위한 콧줄) 등 교체를 위해 매달 연립주택 2층에서 아버지를 업고 내려와 병원에 다니고 있다.

병원에 다니기 어려운 중증환자 등 집에서 간호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병원 밖에서 이들을 돌볼 수 있는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간호사 방문을 위해 의사가 떼줘야 하는 의뢰·지시 서류를 구하기 어려워 환자에게 간단한 처치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다. 국회 재의를 앞둔 간호법 제정안이나 기존 의료법 등 다듬어서 의료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중증환자, 가정에도 많은데… 현행 의료법·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의 내용을 28일 종합하면, 간호사가 병원 밖 환자 집을 방문해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크게 가정간호와 방문간호다. 가정간호는 의료기관의 가정간호팀 소속 간호사가 환자 집에 찾아가 처치·검체 채취(채혈 등)·주사·투약지도를 한다. 의사 또는 한의사가 발급하는 가정간호 의뢰서에 따라 이뤄진다. 방문간호는 장기요양기관 소속 간호사·간호조무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장기요양 등급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제공한다. 역시 의사·한의사·치과의사의 방문간호 지시서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는 늘고 있다. 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20년 건보 자료를 기반으로 추계한 ‘지역사회통합돌봄의 발전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가정·방문간호 수요는 △거동 불편 노인(20만명) △퇴원환자(10만명) △생애 말기환자(9만3000여명) 등 약 40만명에 달한다.

실제로 가정·방문간호에 종사하는 간호사들은 “아픈 사람은 입원실만이 아니라 병원 밖에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가정간호팀의 경우, 간호사 10여명이 매일 서울 전역 환자 가정을 7곳씩 돈다. 이들이 돌보는 환자 약 70%는 뇌경색·중풍 후유증 등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와상환자다.

면역이 부족한 고령자가 1주일 이상 같은 자세로 누워 있으면 피부가 짓무르는 욕창이 생기기 쉽다. 한달 이상 방치하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상태가 악화하거나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환부를 소독하고 괴사된 조직을 잘라내는 등 처치가 가정간호팀의 주된 업무의 하나다. 비위관·배뇨관 등을 달고 퇴원한 환자들의 감염 관리와 튜브 교체도 이들이 맡는다. 이 병원 소속 한 간호사는 <한겨레>에 “보호자 역시 고령인 경우가 많아 정기적으로 병원에 오가기 어려워 가정간호팀이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정·방문간호사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가정간호 제공 기관 175곳에서 활동하는 가정전문간호사는 748명으로, 자격보유자(6558명)의 11.4%에 불과하다. 가정전문간호사 자격 취득에 필요한 2년제 석사 과정 학교가 전국 6곳 뿐인 데다, 돌보는 환자의 중증도가 높아 이직도 잦다.

■‘지시’ 없이는 욕창 소독도 ‘불법’ 의료기관이 방문간호 지시서 등의 발급을 꺼려 환자들의 서비스 이용이 어렵다는 게 간호계 주장이다. 해당 의료기관 소속이 아닌 방문간호사 등에게 환자를 맡겼다가 의료사고를 우려하는 병·의원이 많기 때문이다. 가정간호팀을 운영하는 상급종합병원 조차 자기 진료과 소관이 아닌 질환에는 가정간호 의뢰서 발급을 꺼리는 편이다. 수도권 한 병원의 가정간호팀장은 “예를 들어, 호흡기내과에서 폐렴 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가 자택에서 욕창이 생기면 욕창 처치를 위한 방문간호 의뢰서를 써주지 않으려 한다”며 “결국 환자는 성형외과 등에서 새로 진료를 봐야 하는데 외래 예약에만 2주 이상 걸려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면서도 환자를 처치할 법적 근거가 없어 제 역할을 못하는 간호사들도 있다. 지방자치단체 보건소나 읍·면·동 주민센터 등에 소속된 이들이 대표적이다. 현행 의료법상 가정·방문간호 등을 빼고는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사 업무는 허용되지 않는다. 지자체 소속 간호사가 환자 가정에 방문해도 환부를 소독하거나 거즈를 붙이는 등의 간단한 처치는 모두 불법이다. 환자를 앞에 두고도 건강관리 지도와 복지제도 연결·상담 등의 업무만 보고 있다.

간호사들이 의료기관 밖에서도 필요한 구실을 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 안전 담보를 전제로 지자체 소속 간호사 등의 업무 범위를 넓히고, 가정·방문간호 역시 의뢰서·지시서를 받은 경우 욕창 등 빈발하는 질환에 대해서는 응급처치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이 별다른 사유 없이 퇴원 환자의 방문 서비스 의뢰를 거부하지 않도록 퇴원시 해당 서비스 안내를 의무화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의료기관들이 외래 환자를 받아 (진료·처방) 행위별로 수가를 받는 데만 집중할 뿐, 퇴원 환자를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돌볼지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큰 문제”라며 “(가정·방문간호 서류 등) 퇴원 환자를 다음 기관에 연계하는 데 필요한 요건을 갖춰서 보내게끔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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