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30대 남성이 28일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한 여성이 교제 폭력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전 연인의 손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의 초동 조처가 적절했냐는 논란과 함께 스토킹이나 가정폭력이 아닌 교제 폭력은 현행법상 보호 장치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금천경찰서는 ‘시흥동 살인 사건’ 피해자 ㄱ(47)씨의 폭행 신고로 전 남자친구 ㄴ(33)씨를 23분간 불러 조사하고도 적절한 보호조처를 하지 않았다. ㄴ씨는 이별 통보를 받은 뒤 ㄱ씨에게 다시 만나자고 강요하던 과정에서 폭력을 저질러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인 26일 아침 7시17분께 시흥동 지하상가 주차장에서 ㄱ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폭력 신고를 접수한 뒤 ㄱ씨가 “ㄴ씨의 처벌과 귀가보호 조치를 원하지 않는다. 연인관계이지만 결혼할 생각이 없다. 생활비도 같이 쓰지는 않으며, 한번 집을 나가면 오래 나갔다가 가끔 들어온다”는 진술에 근거해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해 분리조치를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접근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방법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해자 ㄴ씨는 피해 여성 및 어머니와 함께 같은 집에서 일주일에 1~2일 지내는 관계였지만, 경찰은 사실혼에 가까운 동거 생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안이한 인식도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지만, 교제 폭력 법률 미비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가정폭력 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이 분리와 접근금지를 위한 잠정조치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교제 폭력은 별도의 보호 조처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민고은 변호사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해당 법에 교제 폭력에 대한) 관련 법률 규정은 없고, 연인 관계에서 발생한 폭행이나 살인은 그냥 일반 폭행죄, 살인죄가 적용된다”며 “연인 사이의 범죄는 가정폭력 처벌법이나 스토킹 처벌법 내 적용할 수 있는 ‘접근 금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신청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범죄는 초기에 막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해자를 구치소에 최소 1개월이라도 분리해 우발적으로 보복심리에 따라 살해를 범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도 “현재로써는 피해자가 경찰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보호조치를 원한다고 얘기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경찰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를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법적 규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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