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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단의 드리블이 통합 정책” 이주민 품은 프랑스 축구의 힘

등록 2023-05-25 05:00수정 2023-06-26 22:55

한겨레 창간기획ㅣ이주시대, 스포츠로 경계를 넘다②
프랑스 남자축구 대표팀의 지네딘 지단(왼쪽부터), 마르셀 드사이, 로랑 블랑이 1998년 6월12일(현지시각)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월드컵 브라질과의 결승전을 이기고 우승한 뒤 트로피를 만지고 있다. 생드니/AP 연합뉴스
프랑스 남자축구 대표팀의 지네딘 지단(왼쪽부터), 마르셀 드사이, 로랑 블랑이 1998년 6월12일(현지시각)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월드컵 브라질과의 결승전을 이기고 우승한 뒤 트로피를 만지고 있다. 생드니/AP 연합뉴스

지네딘 지단부터 킬리안 음바페까지.

현대 프랑스 축구를 관통하는 정체성은 ‘이주민’이다. 사상 첫 월드컵 트로피를 따낸 1998년(프랑스월드컵)에도 그랬고 지켜보는 모두의 피를 말렸던 지난해(카타르월드컵)에도 그랬다. 25년 전 ‘레 블뢰’(프랑스 축구 대표팀을 칭하는 용어)의 에이스는 마르세유의 알제리계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 지단이었고, 지금은 카메룬 출신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어머니를 둔 파리 교외 출생의 음바페다. 프랑스는 인종·국적·민족·출생을 아우른 재능들로 세대교체 선순환의 페달을 밟아 왔고, 대표팀은 자연스레 통합의 상징이 됐다.

프랑스 사회는 이 상징성을 그간 수집한 우승컵(월드컵 2개, 유로 1개)만큼이나 각별히 여긴다. 프랑스월드컵 당시 내무부에서는 “지단의 드리블이 수년간의 통합 정책보다 많은 일을 해냈다”는 평이 나왔고, 언론은 이 팀에 삼색기를 본떠 ‘블라크(블랙), 블랑, 뵈르’(Black, Blanc, Beur)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흑인, 백인, 아랍인’이라는 뜻이었다. 근대의 한 세월을 제국으로 영위했던 식민주의의 유산은 21세기 가장 잘나가는 축구팀의 성공 비결이 됐다. 이제 프랑스는 ‘블라크, 블랑, 뵈르’ 대신 이렇게 외친다.

“자유, 평등, 음바페”(Liberté, égalité, Mbappé).

지난해 12월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훈련 중인 킬리안 음바페(왼쪽 둘째)와 프랑스 선수들. 교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훈련 중인 킬리안 음바페(왼쪽 둘째)와 프랑스 선수들. 교도 연합뉴스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나라의 축구 주전 베스트11이 사회의 다양성을 비추는 거울 구실을 한다.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은 아일랜드 출신이고, 수비수 카일 워커는 자메이카계다. 카타르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부카요 사카의 어머니는 나이지리아 출생이다. 영국 언론들은 “이민자 없는 대표팀을 만든다면 기껏해야 3~4명이 최대일 것”이라고 하곤 한다. 난민 캠프에서 자란 축구 천재 알폰소 데이비스와 함께 사상 첫 월드컵 본선을 치른 캐나다 역시 26명 엔트리 중 7명(26%)이 캐나다 밖에서 태어난 선수들이다. 캐나다의 이민자 인구 비율은 약 23%, 대표팀 구성과 흡사하다.

종목을 확대하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중(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서도 적극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2년 전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을 대표한 두 얼굴은 다인종 선수였다.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하치무라 루이(베냉 출신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가 일본 대표팀 기수로 나섰고,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아이티 출신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가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로 등장했다. 각자의 종목에서 탁월한 성취를 일군 두 스타는 존재감만으로 일본 사회에 ‘일본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당시 30여명의 혼혈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했다.

지난해 호주오픈 경기를 치르고 있는 일본의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 AP 연합뉴스
지난해 호주오픈 경기를 치르고 있는 일본의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 AP 연합뉴스

미국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서부 콘퍼런스 결승 경기를 앞두고 연습 중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포워드 하치무라 루이. AFP 연합뉴스
미국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서부 콘퍼런스 결승 경기를 앞두고 연습 중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포워드 하치무라 루이. AFP 연합뉴스

스포츠와 다양성을 둘러싼 이들 사회의 체험은 물론,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다. 국가, 민족 순혈주의에 대한 고집은 다양성에 단단한 벽을 세우고, 스포츠는 종종 그 최전선이 된다.

지단과 음바페가 맹활약을 선보일 때마다 극우정당 국민연합(과거 국민전선)은 대통령 선거 득표율을 경신했다. 2002년에는 장마리 르펜이 창당 이후 첫 결선 투표에 진출했고 2017년과 2022년에는 그의 딸 마린 르펜이 연달아 결선에 올랐다. 이들은 “프랑스 대표팀에 백인 아닌 선수가 너무 많다”라고 공격했던 정치 세력이다. 지난 3월 영국에서는 정부가 ‘불법이민 방지법안’을 추진하면서 축구계와 마찰을 빚었고, 오사카와 하치무라는 인종차별 섞인 사람들의 린치에 괴로움을 호소한 바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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