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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용산의 ‘허상수 재심’ 몰이해…“결론 내놓고 법 논리 맞췄다”

등록 2023-04-26 08:00수정 2023-04-26 09:56

[뉴스AS] 과거사 재심에 대한 해석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회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으로 선출됐으나 50일 만에 대통령실 인사검증 과정에서 탈락한 허상수(68)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대표를 즉시 임명할 것을 촉구하고 잇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회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으로 선출됐으나 50일 만에 대통령실 인사검증 과정에서 탈락한 허상수(68)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대표를 즉시 임명할 것을 촉구하고 잇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영화 <재심>(2017)은 누명을 쓴 어느 소년의 이야기다.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목격자였던 소년은 경찰의 강압수사로 범인이 되어 10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2000년 8월 전북 익산시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형을 다 살고 나온 그는 변호사의 조력을 얻어 재심을 신청한다. 무죄 판결, 그리고 진범의 구속. ‘재심’의 존재를 널리 알린 사건이다.

재심은 누명을 쓴 사람들이 신청한다. 억울한 재판을 받은 이들이 신청한다. 허상수 재경4.3희생자및피해자 유족회 공동대표도 그랬다. 1980년 중앙국제법률특허사무소 노조 분회장으로서 해고를 당한 뒤 단체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국가보위법)이라는 올가미에 걸렸다. 그 올가미가 남긴 피해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재심을 신청해 2021년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은 또다른 올가미가 되었다.

40년 만에 벗은 올가미가 또 다른 올가미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으로 국회 본회의 찬반표결을 통과한 그는 지난 4월21일 대통령실 인사검증에서 최종 탈락했다. 국가보위법 위반은 무죄가 됐지만 병합됐던 죄명인 변조사문서행사, 건조물침입은 재심사유에 포함되지 않아 법원이 유죄를 유지하되 형량을 낮춰 선고유예를 한 것인데, 대통령실은 이를 국가공무원법상 결격사유라고 해석했다.

허상수 대표가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선고유예도, 결격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걸 의식했는지 대통령실 관계자는 “본인은 좀 억울할 텐데…”라고 하면서도 “법 해석 문제라서 상황변화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허상수 대표와 그를 추천한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히 반발했다. “이중처벌.”(허상수 대표, 21일), “재심제도의 취지를 망각한 위헌적 적용”(민주당, 21일), “야당 추천 몫을 부정하고 모든 권한을 대통령인 자신이 다 휘두르겠다는 독재적 발상”(고민정 민주당최고위원, 24일)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재심의 취지와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실의 재심 해석이기에 상징성이 크다. 재심은 재심대상판결, 즉 원심을 바로잡아주는 기능을 넘어 새로운 효력을 발생시키는가. 그 효력의 범위를 어디까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재심의 여러 판례를 살펴보면서 대통령실의 인사검증 판단이 적절한지 따져보았다.

2016년 12월17일 오전 광주고법에서 열린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아무개(32)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최씨 어머니가 아들 뒤에 서 감격의 눈물을 닦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2016년 12월17일 오전 광주고법에서 열린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아무개(32)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최씨 어머니가 아들 뒤에 서 감격의 눈물을 닦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38년 만에 징역3년 받으면, 다시 형 살아야 하나

2014년 12월 울릉도 간첩단 사건 피해자에 대한 재심 판결(2012도15405)을 보자.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형이 확정됐던 이성희(88) 전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가 청구한 재심사건에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39년만이었다. 재판부는 간첩혐의에 대해 고문과 가혹행위 등을 당하는 과정에서 임의성(자유로움) 없는 자백을 했다며 법정에서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전 교수가 일본 유학시절 북한에 들어갔다 일본을 거쳐 국내로 입국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고 이 전 교수가 재심 판결 직후 다시 징역3년과 자격정지 3년의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이었던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심에서는 무죄판결만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재심 판결을 그림자 판결, 허구적 재판 같은 말로 부른다”며 “이는 재심의 유죄판결이 아무런 법적 효과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실제로 형사소송법은 유죄의 확정판결과 항소 또는 상고의 기각판결에 대하여 각 그 선고를 받은 자의 이익을 위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이른바 이익재심만을 허용하고 있다(제420조, 제421조 제1항) 그러나 재심이 이익으로만 돌아오지는 않는다.

간통은 무죄 났는데 상해만 재심에서 벌금 400만원

이번에는 2018년 2월 간통과 상해죄로 처벌받은 ㄱ씨에 대한 재심 판결(2015도15782)의 경우다. 대법원은 간통과 상해죄로 2009년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ㄱ씨가 신청한 재심에서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간통죄는 2015년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효력이 상실되었기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남은 범죄사실에 대해 형을 새로 정했다. 여기서 재심의 유죄판결은 그림자가 아니다. 앞의 울릉도 간첩사건과 다르다. ㄱ씨는 원심에서 선고받은 집행유예 기간이 다 도과(경과)되었음에도 벌금 400만원을 내야 했다.

이 판결은 “상해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재심 법원 판단이 영향을 끼쳤다. 실제 원심 공소사실을 보면 ㄱ씨는 2003년 피해자 ㄴ씨와 “자녀 교육문제로 다투다가 화가 나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수회 때려 피해자에게 약 6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치아탈구상 등을 가한” 사실 등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1974년 3월 중앙정보부는 ‘사상 최대 규모’라며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사건 발표 뒤 유신 정권은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고 민청학련·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일으켰다. 같은 해 4월, 이 사건으로 검거된 32명이 서울 형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으로 첫 재판을 받으러 가고 있다. 당시에는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40년이 지난 올해 1~2월 재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보도사진연감
1974년 3월 중앙정보부는 ‘사상 최대 규모’라며 울릉도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사건 발표 뒤 유신 정권은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고 민청학련·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일으켰다. 같은 해 4월, 이 사건으로 검거된 32명이 서울 형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으로 첫 재판을 받으러 가고 있다. 당시에는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40년이 지난 올해 1~2월 재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보도사진연감

원심서 집유 받고 재심서 또 집유, 그래도 유효?

2019년의 또다른 대법원 판결(2018도13382)도 있다. 피고인 ㄷ씨가 집행유예 기간 중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 위반(보복·협박등)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되면서 집행유예가 무효가 되고 유예된 형이 집행되었다. 그런데 재심판결에서 새로이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이 판결문을 보면 “재심판결에서 정한 형이 재심대상판결의 형보다 중하지 않은 이상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이나 이익재심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판결이 정당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즉 재심판결이 원심보다 중하지 않으면 피고인 불이익과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다.

맨 앞에서 언급한 영화 <재심>의 실제 인물로서 ‘재심 전문’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판결이 확정되면 원 판결의 효과는 상실된다. 그게 재심 제도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재심 법원이 새로 형을 선고하면서, 원심을 감안해 형을 경감한 경우도 있다. 박 변호사는 2019년 대법원 재심 판결의 하급심 판결인 대구고등법원 판결(2017노4027)을 소개해주었다. 대구고법은 대법원 판결과 같은 논리로 집행유예를 선고했지만 재심에서 판결한 집행유예 기간을 계산할 때 원심에서의 집행유예 기간을 공제하도록 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재심판결에서 새롭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더라도 종전의 확정판결을 근거로 진행된 집행유예 기간은 유효한 형의 집행으로 보아 새로운 집행유예 기간에서 해당 기간만큼 공제하는 것이 재심판결의 집행유예 기간 기산에 관한 검찰 실무례”라는 것이다. 검찰 실무례란 검찰 실무예규를 말한다. 박 변호사는 “선고유예에 대해서도 검찰의 실무례가 있지 않겠냐”면서 “선고유예도 재심의 집행유예 기간 산정처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허 대표의 경우 재심에서 선고유예를 받았지만, 원심(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의 처분기간 1년을 제하고 계산할 수 있지 않겠냐는 뜻이다. 선고유예는 2년이 지나면 면소로 간주되므로, 원심 집행유예 기간 1년을 빼면 선고유예 선고 1년 뒤 면소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고, 허 대표는 1년8개월 전 재심 판결을 받았으므로, 이미 면소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집유나 벌금은 쉽게…재심 판결의 어떤 흐름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재심 판결에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불이익이 있을 경우에는 최대한 감안을 해주지만, 집행유예나 벌금형은 ‘이 정도는 한 번 더 받아도 되지’라며 쉽게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평생 처벌을 경험해보지 않은 판사들의 감각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2021년 8월 재심 재판장으로서 허상수 대표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서울고등법원 이재희 판사는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최대한 선처를 한 것인데 묘하게 하필 이때 국가공무원이 되려다 안타까운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번에 대통령실의 진실화해위원 인사검증을 맡은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은 검증 과정에서 재심의 어떤 판례를 참고했을까. 맨 앞의 울릉도간첩단 사건을 원용한 것 같지는 않다. 재심 판결로 인해 오히려 벌금 400만원을 낸 간통·상해죄에 대한 2018년 재심 판결과 집행유예 기간에 형을 산 피고에게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한 2019년 재심 판결에서 힌트를 얻은 듯 하다. 두 사건을 통해 “재심을 통해서도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상상력의 날개를 펴지는 않았을까. 허 대표 사건은 40년 전 독재시대의 공안 사건이고, 나머지 두 사건은 5년 이내에 벌어진 일반 형사 사건이다. 전자가 후자와 유사하다고 여길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앞의 대구고등법원 판례를 참고했다면 재심의 선고유예 기간에서 원심의 집행유예 기간을 공제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이번 인사검증 결과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대통령실이 결론을 정해놓고 법 논리를 맞췄다”고 의심한다.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재심의 취지를 대통령이 나서 변질시켰다고 말한다. 과거사의 진실을 캐고 화해의 다리를 놓기 위해 만든 진실화해위원 후보의 과거 피해를 이용한 일이어서 더욱 고약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이번 일을 재심제도 개선과 공정한 법해석 논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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