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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순간] 논밭 되살리는 쟁기질 짝꿍, 이장님과 ‘안순이’

등록 2023-04-10 05:00수정 2023-04-10 08:03

충남 홍성서 56년째 쟁기질 고집
함동식 이장이 일소 ‘안순이’의 고삐를 쥐고 앞서가자 아들 영일씨가 쟁기질을 하며 뒤를 따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함동식 이장이 일소 ‘안순이’의 고삐를 쥐고 앞서가자 아들 영일씨가 쟁기질을 하며 뒤를 따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랴~와~와~쩌~쩌~.” 함동식(71) 이장이 고삐를 손에 쥐고 ‘안순이’를 천천히 몰아갔다. 아들 영일(42)씨는 쟁기를 비스듬히 밭에 박은 채 뒤따랐다. 안순이는 함 이장의 구령 소리가 익숙한 듯 ‘이랴’에 앞으로 가고, ‘와’에 멈추고, 고삐를 당기면 오른쪽으로, ‘쩌쩌’에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랴~와~와~쩌~쩌~”가 몇번 반복된 뒤 쟁기가 지난 밭자리는 마른 흙이 뒤집혀 촉촉한 속흙이 드러났다.

함동식 이장이 안순이를 몰고 있다. 박종식 기자
함동식 이장이 안순이를 몰고 있다. 박종식 기자

충남 홍성군 홍동면 모전마을의 함동식 이장은 56년째 쟁기질로 논밭을 갈고 있다. 열다섯에 농사일을 시작한 함 이장은 ‘농자천하지대본’(농업은 천하의 큰 근본)을 마음에 새기고 지금까지 3만여평의 논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살아오고 있다.

15년을 함께한 일소 ‘누렁이’를 2019년에 떠나보내고, 일곱번째 ‘쟁기질 동지’인 안순이와 함께 3천여평의 밭을 일구고 있다. 키우던 송아지 20마리 중 선택된 안순이는 3년여 동안의 훈련을 통해 일소로 거듭났다. 뿔 모양이 반듯하고 발굽이 둥글며 등뼈가 곧은 안순이는 일소로 제격이었다. “어려서 기틀을 잡아놔야 일소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겨.” 안순이는 쟁기질을 하다 돌에 걸리면 알아서 서고, 밭을 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더라도 함씨의 ‘와, 와’ 단 두 마디에 제 길을 찾았다.

함동식 이장이 안순이게 먹일 짚단을 자르고 있다. 박종식 기자
함동식 이장이 안순이게 먹일 짚단을 자르고 있다. 박종식 기자

함 이장에게 안순이와 함께 하는 쟁기질은 자연을 살리는 작은 실천 중 하나다. “‘트랙터질’로 논밭을 갈면 빠르고 편하지만, 기계 부품과 기름이 세상으로 되돌아와 자연을 파괴시키는 법이여.”

잠깐의 휴식 뒤 함씨는 안순이를 다시 앞세웠다. 쟁기가 밭을 가르자 흙냄새가 뭉근히 사방으로 퍼졌다. 안순이 목에 달린 워낭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봄이 오는 들녘을 깨우고 있었다.

2023년 4월 1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23년 4월 1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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