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암호화폐) ‘퓨리에버’ 발행업체 모습. 김가윤 기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납치·살인 사건의 범행 동기로 뒷돈을 받고 거래소에 상장됐던 가상자산(암호화폐) ‘퓨리에버 코인’ 투자를 둘러싼 금전적 갈등이 꼽히고 있다. 해당 코인은 상장 이후에도 시세 조작이 의심되는 거래가 빈번해 ‘상장유의 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규제 사각지대였던 ‘코인판’에 당국의 규제가 서둘러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 땐 뒷돈, 상장 후엔 마켓메이킹(MM) 의혹
‘퓨리에버’ 코인은 2020년 11월13일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에 상장됐다. 코인 백서(가상자산 발행자들이 공개하는 일종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블록체인을 활용해 청정공기를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서울시의회·포스코·KT·서울대 등을 협업기관으로 홍보하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다 서울시의회가 협업기관이 아니라고 항의하자 업체는 지난 4일 홍보 배너를 삭제했다. 한 시의원이 개최한 미세먼지 관련 토론회에 업체 대표가 패널로 참석한 뒤 시의회를 협업기관이라고 홍보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서울시의회와 퓨리에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장 과정부터 거래소 임직원에게 ‘뒷돈’을 건네는 등 부정한 방법이 동원됐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달 7일 가상자산 상장 브로커 고아무개씨를 구속기소했다. 고씨는 2019년 12월부터 2021년 5월까지 미술품 연계 유틸리티 토큰인 ‘피카’를 포함해 총 29개 코인에 대한 상장 대가로 코인원에서 상장 업무를 총괄하던 전아무개 이사와 상장 실무 책임자인 상장팀장 ㄱ씨에게 약 9억3000만원을 전달한 혐의(배임증재)를 받았다. 퓨리에버 코인은 브로커 고씨가 상장 대가로 뒷돈을 건넨 29개 코인 중 하나였다.
상장 이후 코인 가격은 치솟았다. 1코인 2200원대에서 시작해 한달 가량 뒤인 2020년 12월21일 1만354원까지 기록했다. 이후 코인 가격이 2000원대까지 급락한 2021년 3월, 납치·살인 사건 등장인물들이 얽힌 사건이 발생한다.
납치·살인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법률사무소 사무장 이아무개(35)씨와 피해자 ㄱ씨 등은 퓨리에버 코인 투자 홍보·마케팅 업무를 하던 40대 황아무개·유아무개씨 부부를 찾아가 투자금을 돌려받으려 했다. 주거침입과 감금, 공갈 등의 혐의로 고소당해 경찰 조사도 받았다. 코인 가격이 급등 뒤 급락하자 이들은 황씨 부부가 시세를 조종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긴 뒤 코인 가격을 떨어트린 것으로 의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해당 코인은 시세 조작을 위한 자전거래(스스로 매수·매도하는 거래)로 보이는 거래가 빈발했다. 코인업계에서는 이를 통상 ‘마켓메이킹(MM)’이라고 부른다. 특히 ‘가두리 펌핑’ 기법이 종종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4월 500원대까지 폭락했던 가격이 2배 이상 폭등했는데, 당시 코인 업체는 ‘테스트가 필요하다’며 코인 입출금을 막았다. 업계에서는 거래를 정지시켜 가격을 올리는 기법을 ‘가두리 펌핑’이라 부른다. 유통 물량을 줄인 뒤 세력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꾸며 투자자들의 추가 매수를 유도, 이들에게 물량을 떠넘기는 수법이다. 이때문에 입출금이 다시 시작되면 가격은 다시 폭락한다. 실제 이 경우도 해당 코인 가격은 다시 500원대로 내려왔다. 여러 코인 커뮤니티에서 시세조종 의혹을 제기했던 이유다. 거래소 코인원은 지난달 3일 퓨리케어 코인 등 9개 코인을 무더기 상장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2주 뒤 해제)
퓨리에버 코인 발행사는 내부 직원 없이 외부 코인 마케팅 업체에 맡겨 판매와 영업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해외 계약 등을 강조하는 마케팅에 집중했다. 납치·살해 사건이 불거진 뒤 낸 입장문에서도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해서 조만간 중요한 계약이 준비될 예정이다. 민감한 상황이기에 (범죄와) 연관성을 추측으로 이어가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번 사건의 윗선으로 의심하는 유씨·황씨 부부를 통해 코인을 구입했다가 수억원대 손해를 입은 이아무개(52)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유씨 부부는 다른 코인의 부산 지역 총판이자, 퓨리에버 코인의 마케팅이사라고 말했다. 다른 코인으로 입은 손실을 퓨리에버 투자로 만회하라고 권유했다”며 “하지만 투자 며칠 뒤 가격이 급락했고 이후 이들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마지막 설거지(세력이 짜놓은 작전에 걸려 손실을 떠안는 것)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관련 규제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시장법 규제를 받지 않는 코인 시장은 무법천지라고 보면 된다”며 “몇명이서 사고 팔며 시장을 조작할 수 있는 시장에서 피해를 당하면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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