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부부라는 이유로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박탈당했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낸 동성 부부 김용민·소성욱씨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동성부부라는 이유로 직장가입자인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이 자의적인 차별행위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법률상 혼인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동성부부들에게 인정되는 사회보장제도의 보장 범위가 한발짝 넓어지게 됐다. 1심 판결을 뒤집고 이들의 권리를 인정한 항소심 재판부는
사회보장제도 등 공법적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는 인정돼선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고법 행정1-3부(재판장 이승한)는 21일 사실혼 동성부부 소성욱(32)씨가 직장가입자인 배우자 김용민(33)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소씨의 손을 들었다. 앞서 사실혼 역시 ‘남녀 간의 결합’이라며 이들 부부의 가족법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피부양자 지위마저 부인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다만 2심 재판부도 소씨와 김씨 부부의 사실혼을 그 자체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소씨 부부가 외견상 혼인관계의 공동생활과 유사한 관계로 보인다면서도, ‘이성 간의 혼인’ 만을 허용하는 우리 민법과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 헌법재판소 결정 등에 따라 사실혼 관계 자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들 부부에 대해 ‘동성결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혼인·상속·자녀 양육 등 가족관계에 따라 인정되는 민법상 권리와 의무를 이들 부부에게 인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들 부부에게 건강보험 상 피부양자 관계마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직장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회보장 차원에서 보호해야할 생활공동체의 개념이 기존 가족 개념과 달라지고 있다”며 이들 부부의 ‘동성 결합’이 피부양자 관계를 인정하고 있는 ‘사실혼 부부 집단’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판단했다.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가 생활 공동체 관계에 있고 △피부양자가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지하며 △소득 및 재산이 일정 수준 이하라는 점에서 사회보장의 혜택을 동일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가족 관계 등 극히 일부 영역을 제외하곤 우리 사회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이상 통용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이미 사법적 관계에서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므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며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을 대리한 박한희 변호사(희망법)는 “동성 배우자의 권리도 차별없이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 즉 누구든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을 확인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특히 재판부가 ‘성적 지향’ 부분을 짚은 것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호림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 활동가는 “법원이 지난 2016년 동성 커플인 김조광수씨와 김승환씨의 혼인을 인정하지 않았던 판결과 비교하면, 이날 판결은 동성 부부에게 사실혼 배우자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 자체가 차별이고 평등 원칙에 위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진전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양성의 구별과 그 결합을 혼인의 전제로 두고 있는 법·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가족 공동체를 형성해 생활한 동성커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차별의 현실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며 “국가는 이런 차별을 해결할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 법 체계 안에 동성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보장제도가 많다”며 “현재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보장체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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