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사무소에서 한국 정부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심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 회원국들이 지난달 말 한국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젠더 폭력 대응 강화, 사형제 폐지 등 모두 263개의 정책 개선 사항을 권고했다. 한국 정부는 이 가운데 97개 권고사항만 우선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3일 유엔인권이사회 누리집을 보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진행된 유엔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인권상황 정책검토(UPR·유피알) 심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심의결과보고서가 올라와 있다. 국가별 인권상황 정책검토는 유엔 회원국 인권상황을 4∼5년마다 정기적으로 심사·점검하는 제도로, 2006년 출범한 유엔 인권이사회의 핵심 인권감시 체계다. 회원국 모두 서로 다른 회원국의 인권상황을 평가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안을 권고한다.
인권상황 정책검토 실무그룹이 채택한 이번 심의결과보고서에는 유엔 회원국(193개국) 중 95개국이 한국 정부에 권고한 263개 개선사항과 각 사항에 대한 한국 정부의 수용 여부가 적혀 있다. 정부는 이 중 97개 권고사항은 수용하겠다고 밝혔고, 나머지 165개 권고사항의 수용 여부는 늦어도 제53차 유엔인권이사회 정기회까지 밝힐 예정이다. 제53차 정기회 일정은 오는 6월5일(현지시간) 열리는 준비회의 때 정해진다.
정부가 1차로 수용 의사를 밝힌 권고안은 젠더 기반 폭력과 차별 대응 노력 및 성평등 증진을 위한 정책 강화, 성별임금격차 축소 조처 강구, 장애인의 대중교통 및 공공시설 접근성 향상과 건강권 보장,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근거한 차별 관행 금지, 난민 차별을 막기 위한 추가 조처 고려 등이다.
다만, 정부는 성별·종교·장애·인종·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군 성소수자 처벌 조항인 군형법 조항(제92조의6) 폐지 등 구체적인 법·제도 이행을 촉구하는 권고안에는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이번 인권상황 정책검토 심의를 앞두고 지난해 7월 비영리기구(NGO) 보고서를 제출한 461개 시민사회단체는 “대한민국이 1차로 수용한 권고 중 성별정정을 위한 법·제도 개선, 여성·이주민·난민·아동·노인·장애인 등 소수자들 권리를 계속 보장하겠다는 권고들은 환영할 만하나, 이 권고들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입법, 사법, 행정부의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한다”며 “특히 이번에 정부가 즉각 수용 의사를 밝힌 권고들이 ‘노력할 것’, ‘강화할 것’ 등의 낮은 수준의 권고임을 고려한다면 구체적인 일정과 실질적인 이행 방안이 추가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많은 회원국이 권고한 사형제 폐지(30개국),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20개국), 성소수자 권리 보장(27개국),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및 성평등 촉구(48개국),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비준(11개국) 등은 국제사회가 특별한 관심과 개선을 촉구하는 사안인 만큼 수용을 전제로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엔인권이사회 정기회에서는 이사국 서면 질의와 심의 대상국 답변, 국가인권기구 등 이해관계자들 발언과 함께 국가별 인권상황 정책검토 심의결과보고서, 권고사항에 대한 심의 대상국 의견, 심의 대상국의 자발적 공약(향후 계획) 등을 종합해 최종결과보고서가 공식 채택된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