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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글 깨친 섬마을 할머니, ‘오직 한 사람’에게 시를 쓰다 [이 순간]

등록 2023-01-30 05:00수정 2023-01-30 15:18

황화자 할머니가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화 ‘오직 한 사람’을 들어보이고 있다. 완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황화자 할머니가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화 ‘오직 한 사람’을 들어보이고 있다. 완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택배로 하늘나라 남편에게 보내주련다”

나이 일흔에 한글을 깨친 황화자(83)씨는 책이 발간된 기쁨을 서문에 썼다. 전남 완도군 고금면 장중리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고향은 옆옆 섬인 완도군 생일면 생일도다.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할머니는 그 시절 여성이 그렇듯 ‘국민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부모님을 도와 밭일과 김 양식을 도왔다. “옹찰옹찰한(조그맣고 조각난) 밭에서 호미 쥐고 밭일하고, 김발 해 오면 김 떠서 건장에다 널고 했었지.” 먹고사는 게 먼저이던 시절이다 보니 할머니에겐 배움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황화자 할머니가 툇마루에서 자서전을 소리내어 읽고 있다. 완도/박종식 기자
황화자 할머니가 툇마루에서 자서전을 소리내어 읽고 있다. 완도/박종식 기자

“시집와서 보니까 못 배운 게 후회되고 그래 갖고 내가 인자 한 자 한 자 배우러 댕기는 거여.” 2013년 마을 할머니의 권유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고금비전한글학교에 다녔다. 한평생 호미 들고 땅을 파던 할머니의 손에 처음 연필이 들렸다. ‘기역, 니은’ 한 자, 한 자 알아가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숙제인 일기도 70년 만에 처음 써보기도 했다.

남편은 한글 공부하는 황씨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돼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다. “초등학교 6년을 다녀도 한글 모르는 사람은 모른디 자네는 잘한 사람이네.” 그렇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남편이 201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학교 선생님의 제안으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지극한 사랑이 담긴 시 ‘오직 한 사람’을 썼다.

유방암 진단 받은 나한테/ 남편이 울면서 하는 말,// “5년만 더 살어.”/ 그러던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손주 결혼식에서 울었다./ 아들이 동태찜 사도 눈물이 났다./ 며느리가 메이커 잠바를 사 줄 때도/ 울었다.// 오직 한 사람 남편이 없어서.

황화자 할머니가 배웅인사를 하고 있다. 완도/박종식 기자
황화자 할머니가 배웅인사를 하고 있다. 완도/박종식 기자

황씨의 자서전과 일기 등이 한글학교 30여명 학생의 시화작품과 함께 묶여 시화집 <할 말은 태산 같으나>가 지난 2021년 1월 발간됐다. ‘2019 전라남도 문해한마당 시화전’에서 전라남도평생교육진흥원장상을 수상하기도 한 황씨의 소원은 시인이다.

‘눈이 많이 와 꼼짝도 못했다. 너무 추웠다.’라고 짧은 일기를 쓴 황화자씨는 “새해에는 또 뭔 새로운 말이, 글자가 생길 테지. 그러면 또 한 자 한 자 써봐야지”라며 새해 소망을 빌었다.

2023년 1월 3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완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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