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도가 지금처럼 유지될 경우 2055년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장기 재정추계(제5차 재정계산) 시험계산 결과가 27일 나오면서 연금 개혁 논의 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 성패 1차 관건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개혁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 차원의 합의안 도출이다. 전문가 16명으로 꾸려진 민간자문위는 재정추계 결과를 기초로 27~28일 이틀간 개혁안 초안 마련을 위한 토론을 벌였다. 아직 합의엔 이르지 못했는데, 의견 수렴이 어려운 까닭은 재정추계 결과를 해석하는 관점이 국민연금 재정불안 완화를 우선시하는 ‘재정안정론’과 적정 노후소득 보장을 강조하는 ‘소득보장우선론’ 등 개혁 담론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재정안정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내는 것보다 더 많이 받아 가는 ‘저부담-고급여’ 구조이므로 보험료율 인상 등을 통해 수지 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적정 노후소득 보장을 내세우는 쪽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금급여 지출 비율을 근거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한 우리 사회 재정 여력이 충분함을 강조한다. 두 전문가 그룹이 국민연금 지급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재정 범위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보험료와 기금운용 수익을, 후자는 이에 더해 조세 등 국가 재정을 연금 지출에 쓸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시각차에 따라 주목하는 재정추계 결과도 다르다. 재정안정론자들은 2018년 제4차 재정계산에서 2057년으로 전망한 기금 소진 시점이 2055년으로 2년 더 앞당겨졌으며, 기금이 바닥나는 연도의 부과방식 비용률(보험료율)이 소득의 26.1%로 5년 전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부과방식 비용률이란 쌓아놓은 기금이 없을 경우, 해마다 연금 수급자에게 줄 돈을 보험료로 충당할 것을 가정할 때 필요한 보험료율을 뜻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위원장은 “이번 재정추계가 주는 메시지는 재정안정화를 위해 연금 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점”이라며 “단계적 보험료율 인상을 목표로 설정하고 현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까지 포함한 개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소득보장우선론자들은 재정안정론자들이 지나치게 재정불안만 강조해 적정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국민연금 목적을 도외시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이 주목하는 재정추계 결과는 기금 소진 시점이 아닌 국내총생산 대비 연금급여 지출 비율이다. 70년 뒤인 2093년, 국내총생산의 8.8%를 국민연금으로 지출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27일 낸 자료를 보면, 지금도 유럽 각국은 국내총생산의 10% 이상을 공적연금에 지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연금 지출을 감당할 재정 여력은 충분하며 기금 소진에 과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국가 재정을 투입할 수 있으므로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금 소진 시점과 부과방식 비용률은 장부상 회계 수치 같은 것”이라며 “국내총생산 대비 연금급여 지출 비율은 4차나 5차(재정계산) 결과 큰 차이가 없어 보험료를 올린다 하더라도 낮은 소득보장 수준을 더 올려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두 전문가 집단이 좁힐 수 없는 주장을 하면서도,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메시지가 있다. 연금 재정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결정 요인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라는 인식이다. 실제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내부분석 결과, 2018년 재정계산 당시보다 기금소진 시점이 앞당겨지거나 부과방식 비용률이 올라간 핵심 요인은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만 15~49살에 낳을 것으로 기대하는 평균 출생아 수)의 급격한 하락으로 확인됐다. 재정추계위는 합계출산율을 2023년 0.73명→2030년 0.96명→2040년 1.19명으로 전망했다. 지난 추계 때 2023년 1.27명, 2030년 1.32명으로 전망한 것과 견줘 크게 떨어진 수치다.
출산율 하락은 국민연금 가입자 감소 및 보험료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만 18~64살 인구 대비 65살 이상 노인인구를 의미하는 노인부양비도 2023년 27.1%에서 2081년 110.09%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런 결과는 국민연금 가입률을 높이고 기금 수익률을 올려도, 인구 변수를 개선하지 않으면 재정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인구 변수는 연금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대해 아주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인구 대책은 20~30년 뒤 효과가 나타난다”고 짚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기금소진 시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퇴직 연령을 늦추고,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등 모든 세대가 공생할 수 있도록 인구 문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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