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한파 특보가 내려진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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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어린이들의 해묵은 논쟁이 국산 로봇 태권브이(V)와 일제 마징가제트(Z)가 맞붙었을 때 ‘누가 이기느냐’ 였다. 태권브이가 압도적 체격조건(키 56m)을 지닌데다, 태권도로 특화된 격투기술까지 지녀 일대일 대결에서 마징가(키 18m)를 손쉽게 제압한다는 목소리가 셌다. 반대편에선 광자력 빔, 루스트 허리케인, 냉동 광선 등 첨단 무기로 무장한 마징가가 거리를 두고 아웃파이팅을 벌이면 제아무리 태권브이라도 당할 재간이 없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겨울철이면, 로봇 대전과 비슷한 수준의 또 다른 단골 논쟁거리가 ‘남극과 북극 중 어느 쪽이 더 춥냐’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비교적 답이 분명한데, 정답은 ‘남극’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북극 평균기온은 영하 35~40도인 반면, 남극은 영하 55도에 달한다. 대륙으로 된 남극은 땅 위 얼음이 햇빛을 반사하지만, 바다로 된 북극은 열을 흡수·저장해 남극보다 더 따뜻하다”고 풀이한다.
남극 한파가 더 매섭다지만, 한반도 사람들을 직접 괴롭히는 건 북극에서 내려오는 추위다. 북극 한파는 ‘동장군’으로도 불린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퇴패 원인의 하나였던 혹독한 추위를 두고, 당시 영국 언론이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서리장군)라는 비유를 썼다. 이 표현을 일본에서 ‘동장군’(冬將軍·겨울장군)이라고 번역투로 부르던 게 우리나라까지 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1960~70년대 날씨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 ‘동장군의 급습’, ‘동장군 회군’, ‘최전방에 동장군 전초병’, ‘동장군, 게 섰거라’, ‘대한(大寒), 동장군 불러 불호령’처럼 강추위에 대한 재밌는 비유들을 볼 수 있다.
북극 한파는 왜 찾아오는 걸까? 북극에는 차가운 공기 덩어리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동그랗게 띠를 그리듯 도는 ‘극 소용돌이’ 현상이 있다. 이 공기 덩어리가 그대로 남하하면 극심한 한파가 일상처럼 찾아오겠지만, 다행히 극 소용돌이 바깥으로 더 큰 띠를 그리듯 ‘제트기류’가 흘러 남하를 막는 방어벽 구실을 한다. 그러나 때때로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지는데(마이너스 북극진동), 이때 한파가 찾아온다. 안타깝게도 지구온난화 심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고 한다. 기상청은 “지구온난화로 북극 온도가 올라가는 대신 중위도 지역에 이상 저온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극 한파는 점점 기세를 올리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최저 기온이 영하 17.3도, 체감온도는 영하 24.7도까지 떨어졌다. 같은 날 강원 철원군 김화읍 기온이 영하 25.1도였다. 일기예보 제공업체 ‘애큐웨더’를 보면 최근 남극 기온이 영하 25도 안팎인데, ‘한국이 남극보다 추운 것 같다’는 말이 그저 농담 같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올겨울 동장군과의 동행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최근 기상청은 ‘3개월(2~4월) 전망해설서’에서 “현재 (한파가 오기 쉬운) 약한 음(-)의 북극진동 상태이나, 1월 하순에 중립 상태를 보이다가 양(+)의 북극진동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양의 북극진동인 경우, 기압계의 동서 흐름이 원활해지면서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래도 동장군이 물러날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