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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난안전법으로 책임 물을 수 없다면 법 개정에 동의하는가”

등록 2023-01-25 11:00수정 2023-01-25 16:43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 ⑮
지난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고 이지한 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진술을 마친 뒤 오열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고 이지한 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진술을 마친 뒤 오열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편집자: 지난해 11월 6일 <한겨레>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32)씨가 당시 겪었던 상황과 이후 심리 상담 과정 등에 대해 들었습니다. 김씨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상담기록과 일지 등을 당사자 동의를 받아 차례로 옮겨 싣습니다. 김씨는 사고 당일인 10월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인파에 휩쓸렸지만, 행인이 난간으로 끌어올려 가까스로 구출됐습니다. 이후 김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판정받았습니다.

공청회에 참석한 후, 그곳에서 참사희생자 서형주씨의 누나 서이현씨를 만났습니다.
먼저 인사해오는 모습, 쓰고 계시는 글 초반부터 잘 읽었고 너무 힘이 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저는 앞으로도 글을 꾸준히 계속 써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될까 고민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을 꾸준히 만들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이제 나는 글도 많이 써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지 않았는가 고민하며
글 연재를 언제 마무리 지을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고백합니다.

글을 아무리 써내고 언론과 국민들이 반응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참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깨지고 우리 사회 전체가 변하는데는 미약한 노력이었구나 깨닫습니다. 큰 힘이 되지 않아도, 저의 노력을 쉽사리 포기 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며 글을 시작합니다.

이태원 참사 공청회에 생존자로서 다녀왔습니다.
공청회에 가면서 정부와 국회의원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두번의 청문회가 끝났고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사가 다 끝났음을 알았고, 공청회의 발언이나 증언이 수사 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무기력하고 기대감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저, 오롯이 힘들어하는 유족에게 힘이 되기 위해 갔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유족들을 실제로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세상을 상대로 싸우는 과정에서 많이 지치고 무기력해보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구나…알아버린 축 쳐진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나를 눈물나게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을 느낄 것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에 공청회에 나와달라는 요청을 처음에는 거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청회가 시작되고, 제가 놀란 것은 예상과 다른 국회의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여당 야당을 막론하고 모두가 진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눈과 태도, 모두 진심이었습니다.
의원들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생생한 증언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는 듯한 반응,
실제 현장은 이런 느낌이구나, 유족 뿐만 아니라 생존자가 겪는 평범한 일상의 트라우마와 고통은 이런 것이구나, 끔찍한 일상이란 것이 이것이구나 라고 느끼는 듯 했습니다.
참사 직후 정부와 기관들이 얼마나 대응이 부실했는지, 유족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버리고 그로부터 오는 심적인 놀라움과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듣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나를 당황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야할까요,
절망적이라고 생각해야할까요.

다 끝난 마당에 이제와서 진심으로 들어주는 국회의원들을 보며
그래도 이 나라 희망적이라고 저는 생각해야할까요,
아니면, 왜 이제와서 깨닫느냐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야할까요.

국회의원들 모두 생존자 증언이 끝난 후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번 국정조사 실패했음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유가족과 생존자 증언을 듣는 자리를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에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생생한 증언을 이상민 장관, 국무총리, 서울시장, 용산구청장이 듣도록 했어야 했다.
예산안 결정하느라 국정 조사 기간의 반 이상을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너무나 아쉬웠고 미흡한 부분이 많은 국정조사였다.”

그들의 인정을 듣는 것이, 적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왜 매번 지나고 나서 깨닫는지, 미리 예측하고 미리 준비할 수는 없었는지 따져 물어야 할까요.

유가족을 증인으로 채택해서 모두가 함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증인채택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공청회로 모시게 되어 죄송하다고 하는 말을,
그때는 반대했지만 이제와서 직접 듣고, 같이 진심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여당 의원들을 보며
그때는 불러주지 않았냐고 물어야 할까요, 이제라도 들어주어 고맙다고 해야할까요.

제 옆에 앉으신 이태원 상인분이 트라우마로 인해 숨을 잘 못 쉬겠다며 마스크도 쓰는 것이 버겁고, 공청회 5시간 내내 가슴을 계속 치시며 버티고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고
위로하고 싶어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생존자인 나는, 거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라서 1분 1초마다 괴로웠습니다.

“나 이거 이태원 부끄러워서 진짜…못살겠어요….” 대화를 건네오시던 모습,
자신의 발언 시간에 본인이 대신해서 무릎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며
왜 상인분이 사과를 하세요 하고 고개를 떨구고 울었지만,

누군가 무릎꿇고 사과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위로가 되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을 알아줄까요. 사과가 이렇게 위로가 되는, 손쉬운 해결책인데 왜 사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마음은 쉽사리 소화되지 않습니다.

2차 가해로 세상을 등진 159번째 피해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 50분간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 것이냐라고 국회의원이 경찰청 상황관리관에게 물었을 때,
“의원님, 그것은 제가 조금 확인을 해보고요….”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저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발언하기로요.
유족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도 진위여부를 확인하여 말한다는 것이 또다른 2차 가해였습니다.
관료주의적 사회에서 관료로서 일을 하기에 그런 것일까 이해해보려 했지만,
그것 또한 문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료주의에 갇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런 자리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무지함.

“진심으로 모르시는 것 같기에 다시 말씀드립니다.
위에 계시는 분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있으셔야 합니다.
만약 모르신다면, 본인의 무지함에 대해 스스로 열등감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여야 국회의원, 정부 관료들만의 문제일까.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사회 모두에게 결핍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슬퍼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나를 우울하게하는 이야기라면 더이상 듣지 않고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이기심이 지나친 사회는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빠르게 잊혀져가는 사안이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5시간의 공청회 동안 저는 고작 7분 발언, 1분의 기타 의견을 말했고
이것이 그날 저녁 공중파 3사 메인뉴스를 장식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유족도 아니니까, 그들의 아픔에는 새발의 피니까.

뉴스를 보고 부모님이 연락해왔습니다.
참사 후, 저는 저의 고통을 부모님께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내가 아는 부모님이라면 나의 고통을 공감해준다기보다 나무라고
그러게 거기 왜 갔냐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냥 그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기성세대였으니까요.

무엇보다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 부모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이해는한다만 이제 우울해서 더는 이야기 안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거리를 두던 말을요.

“뉴스를 보고 알았다. 힘들었겠다.
엄마의 큰딸로 태어나서 건강하고 똑똑하게 잘 성장해줘서 고맙고 감사해.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식을 어찌 키워야하는지 잘모르면서 부모가 되어서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함도 참 많네. 좀더 깊은 사랑을 주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도 똑똑하고 자존감 강하고 못하는게 없이 잘 성장해줘서 정말 고맙고. 후생에도 엄마는 초롱이가 엄마딸로 다시 만나길 기도한다. 다시 딸로 태어나면 더 많은 사랑과 부모가 한번 되어봤으니 후회 없는 딸로 키울수 있을테니 그때도 꼭 다시 딸로 태어나서 사랑을 듬뿍 받아줬으면 좋겠다. 설에 먹고 싶은 음식있어? 다 해줄게.’’

마치 세상을 등진 딸에게 보내는 것 같은 메시지를 내가 살아남아 전해 받고, 부모와 뜨겁게 화해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할까요. 엄마도 엄마의 자식이 직접 이런 일을 겪는 것을 보고나니 그제서야 지난 자신의 발언이 잘못이었다고, 2014년 그때의 세월호 부모들과 지금 희생자 부모들 마음은 어떨까하고 이해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할까요, 다행이지만 다행이라고 할 수 없는 슬픔은 나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매년 핼러윈을 보내며, 매년 아무 사고 없는 공간이었기에
2022년 핼러윈 때도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사고가 나던 곳은 아니었기에 사고가 날 줄 몰랐고, 더군다나 159명의 희생자가 나오는 대규모 참사가 될 것이란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기에 처음에는 저도 이태원 참사를
단순한 인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참사를 겪고 보니 알았습니다.
지난 몇년간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것은
사고를 예방하기위해 수도 없이 많은 분야에서 사람들이 철저히 대비하고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인파 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기동대가 배치되어 이전에는 사고가 안 났구나.
이태원을 콕 집어, 단단히 준비하라는 정부의 지침이 2020년과 2021년에는 있었구나.
2017년 이후 매년 이태원은 10만명 이상 몰릴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 보고가 있었구나.
올해는, 그 모든 예방책을 하지 않았던 것이구나.

참사와 청문회를 겪으면서 행정 전문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깨달았습니다.
행정전문가가 앉아야 할 자리에, 법관출신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앉아있는 점, 이것부터가 우리나라의 안전은 깨졌음을 절실히 느낍니다.
행정 전문가가 아니니, 그토록 법리에 따르겠다. 수사 결과에 따르겠다라는 말을 외치는 것도
이제서야 이해가 갑니다.

대통령의 잘못은 행정전문가가 아닌 자를 행정안전부 장관에 앉힌 점,
행정안전부 장관의 잘못은, 예측된 인파 관리를 제대로 관리 감독, 지휘를 하지 않은 점입니다.
그 외에도 국회의원, 서울시, 용산구청 등 정부 관료와 책임자들의 잘못은,
인간에 대한 이해 없는 막말, 자신의 잘못인지 아닌지 따져묻는 편협한 이기심,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옹졸한 태도들입니다.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재난안전법상, 서울시, 행정안전부, 경찰청, 서울시자치경찰위원회 등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내용이 결론이었습니다. 애매모호한 재난안전법의 법령 때문에 특별히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설명을 듣고, 처음으로 재난안전법이라는 것을 펼쳐 정독했습니다.

애매모호한 법령인 것도 맞지만, 결국 해석하는 주체가 얼마나 처벌할 의지가 있는지가 관건 아닌가, 조문 해석이라는 것은 판례가 없는 한 사견일 뿐이기때문에
이태원 참사를 법문항 단어 하나하나로만 좁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종합적인 상황을 판단해 어디까지 보고가 올라갔는지, 어디서 어떻게 관리 감독을 처리했는지 판단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좁은 범위로 법을 해석했고 말 장난하듯 책임이 없다고 규정지어버리는 것이 과연 수사를 제대로 하려는 의지가 있었는가 묻고 싶습니다.

다 차치하고 ‘재난안전법상 제4조(국가 등의 책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며,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대응, 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 시행하여야한다’에 따라 그대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2005년 경북 상주 콘서트장 압사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재난안전법과 매뉴얼이, 더 큰 압사 참사가 발생했을 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우리사회는 2005년 이후 무엇이 변했는가. 가슴에 새겨야합니다.

재난안전법상 책임이 모호하여 윗선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법을 개정해야하는 것에는 동의하는지. 특별법을 제정해서 독립적인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에 동의하는지,
그게 안된다면 특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것에 동의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무엇도 안된다면, 그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은 도대체 누가 지는지 묻고 싶습니다.

법리상 책임을 법령 핑계로 벗어나지 말고 도의적 책임이라도 질 수 있는 나라의 어른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꼭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그런 어른들이었다면 이 나라의 안전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나라에게 등을 돌리지 않게, 희망 있는 대한민국이라고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청회를 마무리하면서 혹여나 우리 아이들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염려해 ‘유가족들이 심정적으로 격하게 발언했다면 죄송하다. 국회의원들께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니 너른 양해 부탁드린다’라며 고개숙이는 유가족의 마지막 발언이 슬픕니다. 참사로 인해 가장 큰 고통과 피해를 받는 피해자들이 왜 한없이 고개 숙이는 약자여야 하는가. 우리 모두에게도 생길 수 있는 재난을 왜 우리는 모두가 외면하고 나의 일이 아닌 것 마냥 생각하고 돌아서는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2차 피해를 우려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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