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공장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다양한 스마트 공장 관련 전시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유사 이래 우리나라처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는 없다. 매디슨 프로젝트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해방 직후인 1946년 916달러에서 2018년 3만7928달러로 4000% 이상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기적을 일구어냈다고 찬사를 받는 독일과 일본은 물론이고, 고도 성장의 새 역사를 쓴 중국도 우리와 비교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
경제성장만이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보수 정부가 집권할 때마다 도전받고 있지만, 2016~2017년 촛불 시민항쟁이 보여주듯 한국은 식민지를 경험한 후발 민주주의 국가 중 민주주의를 공고히 해나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불가사의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이런 엄청난 경제·정치적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한국인은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합계출산율(TFR)은 가장 낮으며, 노동시장은 불안정 고용상태에 있는 노동자로 넘친다. 지난 30년 동안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심각해지면서, 이제 불평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성공과 참담한 실패가 공존할 수 있을까. 혹자의 주장처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복지지출을 늘리면 실패가 가려질 수 있을까.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은 1990년 2.6%에서 2020년 13.4%(추정)로 불과 30년 만에 400%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복지 확대가 불필요했다는 것이 아니다. 복지지출을 늘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한국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을 것이다.
분명해진 것이 있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생산 방식을 바꾸지 않고, 복지 확대만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가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빠진 이유는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성공을 이룬 그 방식이 우리를 덫에 빠뜨린 근원이다.
1990년대 이후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숙련 형성을 우회해 급격한 자동화로 생산성을 높이는 성장 방식은 우리를 선진국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숙련노동을 우회하는 성장 방식은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급격히 감소시켰다. 그러자 한국 사회는 세대와 계층을 불문하고 모든 국민이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었다.
지금 당장 내 삶이 위태로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돌보고 연대를 생각하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괜찮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해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불안해한다. 한국 사회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정치가 바뀌면 우리가 성공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다양한 시민의 이해를 대의하는 정치체계를 만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바꾸려고 하는지 그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면, 설령 정치를 바꾼다 한들 우리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각자도생의 삶에 익숙한 시민의 이해를 즉자적으로 반영하는 정치는 지금보다 더 참담한 실패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치를 바꾸고, 바뀐 정치가 새로운 성공의 방식을 찾을 테니까 말이다.
방향은 명확하다. 성공했지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성장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최첨단 자동화 공정, 소수 엘리트, 재벌 대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자동화와 숙련노동,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을 이루며, 모든 국민이 혁신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성장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가 있다.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