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1개월여 지난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들머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2일 이태원 참사 생존자가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숨지면서 생존자 및 유족에 대한 심리치료와 상담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은 치료·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인데, 국민의힘에서 쏟아지는 막말과 2차 가해가 오히려 상처만 키우고 있다.
현재 전국의 트라우마센터 및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들은 연락처가 확보된 참사 생존자와 유족 등에게 지속적으로 심리상담을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14일 <한겨레>가 국가트라우마센터에 확인한 결과, 수도권을 관할하는 국가트라우마센터의 경우 심리상담을 제안한 유족·부상자·목격자 620여명 가운데 12%가 상담을 거절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신건강 ‘고위험군’인 생존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아무런 치료와 상담을 받지 않고 있는 상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연락처가 없는 이들한테는 상담 권유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특성상 당사자 스스로 정신건강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꼭 전문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대형 재난을 겪은 이들은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유가족·생존자·목격자 모두 내키지 않더라도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존자 정신건강을 위해 정부 역시 상담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권유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백종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상담을 거절하는 경우 가운데, 자신의 마음이 아픈지 모르는 경우에는 계속해서 기관, 정부가 상담을 권유하고 설득해야 한다. 또 절망감이 심해서 ‘치료해도 나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치료와 입원을 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과 생존자들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며 대화하는 것이 심리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정찬승 한국트라우마센터 홍보위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세월호 참사 때는 생존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함께 모이는 기회를 많이 마련했다.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은 많이 모여야 한다. 참사를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은 겪은 사람들을 공감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 이분들이 모여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느끼게 하고 서로 기댈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주는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한편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 권성동·송언석 의원의 막말을 비판하며 “최근의 막말이 국민의힘 공식 입장인지”를 물었다. 권 의원은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를 가리켜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 있다”는 막말, 송 의원은 근거 없이 참사 희생자와 마약 관련성을 언급해 유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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