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시청 본관 앞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대비 못한 서울시에 대한 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유가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이태원 참사 발생 40일이 되도록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자, 유족과 시민사회가 ‘직무유기’를 비판하며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오는 10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89명의 유족이 모인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협의회’(가칭)가 창립총회를 연다. 176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도 지난 7일 공식 출범했다.
흩어져 있던 유족이 알음알음 대규모로 결합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경찰 수사, 국정조사, 장관 사퇴, 대통령 사과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는 것이다.
‘셀프 수사’ 논란에도 이태원 참사 책임자를 가리겠다며 시작된 경찰 수사는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한 달여 수사 끝에 신청한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 등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당장 수사를 어떻게 한 것이냐며 부실 수사 논란이 제기됐다. 유가족협의회는 “특수본이 증거인멸 우려를 왜 제대로 밝히지 못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찾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국회 국정조사는 보름째 공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를 문제 삼은 국민의힘이 유가족 면담에 불참하는 등 극한 대치가 계속되면서 전체 45일 일정 중 3분의 1이 아무 성과 없이 지나갔다. 상황이 이런 데도 국민의힘에서는 아예 ‘국정조사 보이콧’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재난·안전 관리 총괄 책임자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 참사 당시 캠핑장 숙면으로 보고조차 받지 못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여권 내 경질 요구를 잠재우려는 듯 연일 화물연대 파업 강경 대응 앞줄에 나서고 있다. 오히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윤핵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특수본의 구속영장 신청 기각을 거론하며 “이상민 장관에 책임을 묻고 탄핵하겠다는 것이 가당키냐 한 일”이냐며 엄호에 나선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의 파면 요구에 진상규명이 먼저라는 입장이지만, 여당 비협조로 파행하는 국정조사에 대해서는 국회의 일이라며 손 놓고 있다. 관저 만찬 정치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오히려 이상민 장관을 관저로 불러 격려하는 등 ‘경질은 없다’는 신호를 분명히 하고 있다.
4·16재단, 가습기살균제참사 범단체 victims, 참여연대 등 165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발족식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단체는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8년간 안전 사회 실현을 위한 요구가 높았음에도 또 다시 참사가 발생한 것에 대해 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민안전’이 최우선시 되는 안전사회를 만드는 데에 힘들 모아가겠다”고 발족 취지를 설명했다.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준)는 공동으로 참사 발생 49일이 되는 오는 16일 저녁 6시에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시민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에 전체 희생자 158명 중 89명(8일 기준)의 유족이 참여한 유가족협의회는 △참사 책임이 정부·지자체·경찰에게 있다는 정부 입장 발표 및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책임 규명 △피해자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규명 △참사 피해자 소통 보장 지원 △희생자 기억과 추모 조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 및 구체적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176개 단체가 모인 시민대책회의는 유가족협의회 요구사항에 더해 재발 방지 및 안전 사회를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대책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비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가 스스로 공언한 대로 ‘성역 없는 수사’가 될 것인지 깊이 우려할 수밖에 없다.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이상민 장관의 해임 요구는 정쟁이 아니라 최소한의 정치적 책무”라고 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태원 참사 49재인 오는 16일 저녁 6시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족과 생존자 등을 위로하는 시민추모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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