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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공격…청년의 과격화, ‘이대남’만일까

등록 2022-11-12 16:39수정 2022-11-13 09:40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여성은 진보적, 남성은 보수적?

“여성보다 남성들이 보수적” 논쟁
‘청소노동자 비판’ 남학생 등 거론
최근 덕성여대서 비슷한 일 생겨
청년 과격화는 성별 문제 아니야
지난달 26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교정에서 임금 동결에 반대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달 26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교정에서 임금 동결에 반대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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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논단에서 잠시 ‘여진남보’라는 말이 거론된 적이 있었다. ‘여성은 진보적, 남성은 보수적’이라는 말이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견해 및 태도에서 나타나는 성별 간 차이,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20대 유권자 내 성별 간 차이, 총선과 대선 전후로 있었던 여러가지 여론조사들에서 나타난 성별 간 차이 등, 이러한 일련의 경향들로부터 청년 여성은 대체로 진보적이고 청년 남성은 대체로 보수적이라는 일반화를 도출할 수 있다는 일종의 ‘합의’가 있었다.

청년 남성은 어느 정도 보수적인가

‘청년 남성은 보수적’(과연 ‘보수’의 가치와 유관하냐는 시비는 잠시 제쳐두고)이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다. 과거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지금의 ‘에펨코리아’까지 몇몇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의 여론, 다수 청년 남성들의 보수세력 지지 경향과 이준석 돌풍, 반사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을 반페미니즘, 혐오, 차별과 배제 경향 등이 그러하다. 지난 8월에는 연세대학교에서 벌어진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시위에 대해 시위자들을 고소한 재학생이 남성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소송 건에 대한 일부 재학생들의 의견 역시 성차가 갈리는 듯 보도가 된 바람에 한국 사회 담론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문제는 20대 남성, 즉 ‘이대남’이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외에 이미 이전부터 문제시됐었던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엔(n)번방 사건, 신당역 살인사건 등을 둘러싼 몇몇 남초 커뮤니티발 언어도단의 언표들까지 겹쳐 이른바 ‘이대남’ 문제는 한국 사회가 시급하게 해답을 찾아야 하는 거대한 질문으로 일찌감치 다가왔다.

이른바 ‘이대남’ 문제가 매우 거대한 질문으로 먼저 부상한 탓에, 비슷한 양상의 청년세대발 혐오, 차별과 배제 문제지만 그 주체가 청년 남성이 아닌 사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이러저러한 진보적 가치들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유권자 중 60% 이상이 보수 정치세력에 반대하고, 시대정신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론조사 등 ‘청년 여성은 진보적’이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것 같은 통계들에 감개무량해하며 ‘이대녀’가 한국 정치의 한 줄기 빛인 양 견강부회하던 사람들이다. 평소 ‘이대남’ 문제에 관해 매일같이 열정적으로 비판적인 논지를 펼치던 논자들 중 일부는 청년 여성발 혐오 및 차별 문제를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개개인의 특수한 문제로 넘긴다. 다른 일부는 아예 없는 일인 양 침묵한다.

얼마 전 덕성여자대학교에서 학내 청소노동자 파업을 비난하는 대자보와 메모가 캠퍼스 게시판들에 붙었다. 대자보(누가 썼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에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팩트 없는 감정적 호소는 선동’ ‘총장을 향한 일방적인 인신공격 및 학교에 대한 모욕을 멈춰라’ ‘시위는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어야 한다’라고 쓰여 있었고 메모들에는 ‘소음공해 STOP 수업방해 STOP’ ‘요구사항은 용역업체에게, 교육기관을 볼모 삼지 마라’라고 쓰여 있었다. 노조 쪽에서 연대를 호소하며 붙인 대자보에는 ‘NO연대’ ‘노조OUT’ ‘노동자OUT’ ‘억지시위, 선동 그만’, ‘연대 안 해요~’ ‘예? 띠용’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잔뜩 붙었다. 경비·청소노동자 시위에 대해 일부 연세대 재학생이 보였던 적대적인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소셜미디어에서 논쟁이 일자 덕성여대 재학생을 옹호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는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청소노동자가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노동자들을 고소한 연세대생과 함께, ‘학생들은 한시간에 150만원을 쓰고 수업을 듣는데 시급 400원 올려달라고 공부를 방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인터뷰한 한 남성 대학생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 일부 덕성여대 재학생들에 대하여 논자들 다수는 비판적인 논지를 개진하는 대신 혼란스러움만 토로했다. 이것은 ‘이대남 문제’부터 사유하고, 그 뒤에 ‘요즘 청년 문제’를 사유한 데서 비롯한 혼란이다. ‘이대남 문제’를 먼저 주어진 것으로 깔아두면, 내가 첫 문단에서 말한 여러가지 성차들, 그리고 ‘청년 여성은 진보적’이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것처럼 보이는 통계들을 본질론적으로 사고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본질론적이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저 모든 성별 간 차이가 곧바로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다. 함정을 피하려면 ‘요즘 청년 문제’부터 사유하고 그 뒤에 ‘이대남 문제’ 및 ‘이대녀’와의 차이를 사유해야 한다.

‘청년 보수화’가 또 다른 선 넘어

덕성여대 캠퍼스 게시판에 쓰인 ‘노동자OUT’, ‘선동 그만’, ‘띠용’ 따위의 메모들이 ‘요즘 청년 문제’의 전형적인 표상을 웅변한다. 특정한 키워드에 대해 반사적인 불호의 정서부터 표시하고 자신을 아주 잠시나마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즉각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근시안적인 경향이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소비자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파업 시위=노동자=선동=음해=폭력=소비자에 대한 공격’이라는 담론사슬(한 단어만 들으면 나머지 단어들이 동시에 상기되는 것)이 각인되어 있다. 이 담론사슬을 깨트리려 하는 노조의 대자보에 (으레 웹상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게시물을 봤을 때 쓰는 말인) ‘띠용’이라는 메모를 붙이는 행위는 ‘부정은 하되 반론할 가치는 없는 헛소리’로 노조의 발언을 축소하면서 자신의 적대감은 강하게 드러내되 논의의 부담으로부터는 달아나는 비겁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을 두고 일부 청년들이 ‘보수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후한 평가다. 나는 ‘청년 보수화’ 대신 ‘청년 과격화’라는 명제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성별을 불문한다.

첫 책 <프로보커터>에 이어 <급진의 20대>를 썼고, <인싸를 죽여라>를 번역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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