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이번 참사의 대다수 희생자가 젊은 층이고, 특히 20대는 10대 시절에 세월호 참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가중되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힘들게 그 과정을 넘긴 사람들이 이번 참사를 다시 겪으며 굉장한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거나, 이 경험 자체에 압도돼 (자신의 감정을) 소화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심리학회 소속인 장현아 대전대 아동교육상담학과 교수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 등에 대한 심리상담을 맡고 있다. 한국심리학회는 회원 가운데 교수나 최상위 전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로 자원봉사단을 꾸려, 지난 1일부터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무료 전화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지난 7일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를 한 장 교수는 “현장에 있던 생존자, 구조에 참여한 사람, 목격자,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영상을 접한 사람 등이 전문가들 우려대로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사람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참사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장에 있었거나 영상을 접한 사람들은 사건 당시 장면이나 소리, 냄새 등이 원하지 않아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상담을 요청한 이들은 자율신경계의 과각성으로 쉽게 놀라거나 수면장애를 경험하고, 집중력 저하·심장박동 증가·무기력함·죄책감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로 인해 본인이 이상해진 것은 아닌지, 앞으로 더 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상담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10대 또는 20대 초반에 겪은 2030의 트라우마가 큰 편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이 세대의 정신건강이 취약해진 점도 지적한다. 이들 세대의 트라우마는 이태원 참사 한 건으로 인한 충격뿐 아니라, 사회적 참사와 감염병 등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재난의 충격이 누적돼온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태원 참사를 겪은 이들이 보이는 트라우마 반응이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정상적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응급상황 앞에서 내 몸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아 트라우마를 겪은 모든 사람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와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날 경우, 전문가들은
심호흡을 하거나 스스로 토닥이는 나비포옹법 등 안정화 기법을 추천한다.
유족·생존자·목격자·구조자 등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회복에는 주변 관심과 애정이 큰 도움이 된다. 장 교수는 “트라우마 치료 교육을 할 때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때는 위협이 없는 때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을 때’라는 말을 많이 인용한다”고 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의 사회적 지지를 통해 안전함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 두지 말고, 옆에 같이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성을 만들어주는 게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장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는 참사 원인 등 진상을 밝혀내야 진정한 애도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은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왜’를 묻는데, 이유를 알지 못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를 경험한 20대가 이번 참사에 분노와 무기력함을 더 느끼는 상황을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참사도 (진상 규명 등) 후속 과정이 잘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
한국심리학회 무료 심리상담 전화 1670-5724
서혜미 기자
h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