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들머리에 할로윈 용품에 국화가 꽂혀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태원 참사로 재난 상황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면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추모의 시간에 이어 ‘추궁의 시간’이 오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수사는 부실한 경비계획·치안활동으로 사고를 방치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재난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등으로 확대 수순을 밟아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수사를 통해 책임 여부를 밝혀야 할 대상은 크게 네 범주로 나뉜다. △경찰과 소방당국의 늑장 대응 △“주최자 없는 행사”라며 책임을 회피한 용산구와 서울시 등 지자체 △재난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참사 현장 불법 증축 등이다.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경찰의 늑장 대응에 초점이 맞춰진 상황이지만, 전체 참사의 사실관계와 종합적인 원인을 파악하려면, 4개 범주에 걸친 입체적인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짚었다.
수사 초기 단계지만 경찰의 안일한 대처는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저녁 6시34분 이후 11건의 ‘압사 우려’ 112 신고 가운데 4건만 출동했다. 서울경찰청 소속 기동대 등 추가 인력 지원을 판단해야 할 경찰 수뇌부는 참사가 벌어지고 1~2시간 뒤에야 첫 보고를 받을 정도로 당시 보고·지시 체계는 붕괴돼 있었다. 비교적 많은 사실관계가 드러난 만큼,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늑장 대처 수사에 먼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재난안전법상 안전관리 책임 주체로 규정된 지방자체단체 및 국가재난관리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도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을 더 열악하게 한 해밀톤호텔 등의 불법 증축과 무허가 가설물 설치 등도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문제다. 일각에서는 혼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누군가 고의로 사람을 밀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수사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복합적인 참사의 실체를 밝혀야 할 경찰의 ‘셀프 수사’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수사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으면서 제 식구 감싸기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태원 참사 당시 충북 제천의 한 캠핑장에서 잠자고 있었던 윤희근 경찰청장의 행적 등이 공개되면서 경찰 수뇌부의 직무유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가운데, 경찰이 과연 스스로 윗선을 겨눌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 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6일 “수사 주체와 수사 대상을 분리하는 것은 수사 신뢰도 확보의 대원칙이다. 특수본이 독립적인 수사 주체라고 하지만, 경찰 지휘부가 관련된 사건인 만큼 계속 경찰이 수사를 맡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9월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으로 ‘대형참사’에 대해서는 수사 개시를 할 수 없게 됐지만, 경찰공무원이 연루된 범죄 사건은 여전히 수사 개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일 “검찰이 경찰의 범죄 자체를 수사할 수는 있지만 참사의 범위가 넓다”며 검찰 직접수사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에 공정한 수사를 위해 특검을 발동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검을 도입하려면 여야 합의로 특검법을 통과시키거나, 법무부 장관이 특검을 발동시키는 ‘상설 특검’ 두가지 방법이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 상황에서 특검에 대한 국회 논의가 공전할 경우, 상설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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