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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태원에 또 가야지, 내년에도 가야지 [생존자의 기록]

등록 2022-11-06 17:00수정 2022-11-07 16:08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④
핼러윈도 이태원도 잘못이 없어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연합뉴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연합뉴스

*편집자: <한겨레>는 6일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ㄱ(32)씨가 당시 겪었던 상황과 이후 심리 상담 과정 등에 대해 들었다. ㄱ씨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상담기록과 일지 등을 당사자 동의를 받아 차례로 옮겨 싣는다. 사고 당일인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인파에 휩쓸렸지만, 행인이 난간으로 끌어올려 가까스로 구출된 ㄱ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판정 받았다.

아이와 어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잖아요

9.

*잠이 오지 않고 , 못 자는 새벽은 자신과 전화상담도 연결이 되지 않으니
자신에게(상담사) 편지를 써보는 방법으로 글을 남기는 것도 좋다는 말에 메모장에 써둔 글

선생님, 저는 확실히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요
잠이 찾아오지 않는 오늘밤은
무섭고 두렵고 초조해서 잠이 오지 않는 게 아닌 거 같아요

그냥 밤 내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립던데요
그리움이었어요

콘헤드 가족 코스튬을 한 3명 가족이 기억나요
20대 딸, 50대 엄마, 아빠더라고요
세대 관계없이 그렇게 콘헤드 코스튬 하고 길거리 즐기는 게 너무 보기 좋더라고요, 그분들은 무사히 집에 가셨을까요?

녹색어머니회 코스튬을 하고 단체로 6명이서 몰려다니던 남자애들은 잘 갔을까요?
‘엄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얼른 집에 들어가’하고 장난도 쳤는데요,
덩치는 산만 해서 어머니 가발을 쓰고 점을 찍고 녹색 모자를 쓰고 노는데 웃기고 귀여웠어요
사진이랑 영상도 찍어뒀거든요 방금도 보고 왔어요
연락이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워요 그냥

파티가 나쁘다고 가르칠 수 있어요?

아기들이 예년보다 이태원에 정말 많았거든요

저는 사실 26살부터 매년 핼러윈을 즐겼어요
그런데 올해 처음 이태원에 한국 아가들이 많이들 나와 있더라고요

몇년간 한국 핼러윈 문화도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어요 나도 내년에는 더욱 캐릭터가 짙고 아이들이 반가워할 만한 캐릭터로 분장해야지
이쁘고 섹시한 거 말고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거 도날드덕 꼭 해야겠다 싶었고요

너무 귀여웠고, 해피핼러윈 외치며 먼저 다가가 인사도 많이 해주었어요 아이들 표정이 어떤지 아세요?

어른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면 부끄러워하지만 두 눈에 반가움이 가득해요 초코릿 주면 더 좋아하고요
아이들은 역시 자기를 이뻐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어요

생각보다 아기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기를 껴주고 같이 놀아주는 어른인 거 혹시 아세요? 아이들은 어른들이랑 놀고 싶어해요
어린 아이들일수록 자기 우주는 부모이자, 그 부모의 친구들이거든요

아이와 어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는 핼러윈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핼러윈이 너무 좋아요

오늘 밤에는 그 아기들이 생각 많이 나네요
걔네는 집에 잘 갔겠지? 뉴스에 아이들 이야기는 없는 거 보니 다들 집에 잘 갔나봐. 같이 온 엄마 아빠를 잃은 건 아니겠지

7살짜리 조카가 있거든요
이모가 핼러윈에 환장하고 놀러 다니는 거 알고 있어요
유치원에서 핼러윈 취소가 됐나 봐요
왜 이번엔 안 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오래 생각해봤어요

사람 많은 데는 위험하니까 가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나중에 커서 이태원도 가는 게 아니야
라고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단편적으로 그렇게 가르치면 이태원은 나쁜 것,
핼러윈은 나쁜 것, 파티는 나쁜 것, 모든 유흥은 나쁜 것
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나쁘죠?
엄마 아빠랑도 같이 놀고 다른 어른들이랑도 놀고
자기 친구들이랑도 노는 축제인데요.

사회의 역할이 뭔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우리는 왜 혐오사회로 가는지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본질을 파악하고 맥락을 짚어주는 어른이어야 되는 거 아닐까요

내년에도 갈 거예요, 도날드덕 분장 하고

아 정말 생각할수록 핼러윈은 잘못이 없어요
이태원도 잘못이 없구요.

그런데 너무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어요
곧 또 국화꽃 놓으러 이태원에 갈 거예요
가서 더 당당히 이태원에서 밥도 먹고 올 거고
내년에도 핼러윈 분장 끝장나게 하고 이태원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은 잘못이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도날드덕으로 분장을 꼭 해야겠어요

그런데 뉴스에 방송과 공연계에서 핼러윈이라는 단어가
이제 사용 못 한다는 뉴스가 나오네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어른들은 정말,,,
모르나 봅니다

정리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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