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이태원 사고’ 현장 인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쪽지와 국화들이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여울ㅣ작가
코로나 시대 이후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숨을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힘들 때 의지할 곳,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도움을 청할 곳, 쉬고 싶고 놀고 싶을 때 돈 걱정 없이 찾아갈 곳이 없었습니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 커피 한 잔, 밥 한 끼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취직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부족하고, 공부하고 싶어도 그 공부로 무엇을 할지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엠제트(MZ) 세대’라 갈라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청년 시절과 똑같이 푸르른 꿈과 빛나는 열정을 지닌 젊은이들이었습니다.
10월29일 이태원, 기나긴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 무려 3년 만의 설렘을 가득 담은 외출이었습니다. 골목길을 걷기만 해도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나는 이태원의 핼러윈 데이는 젊은이들에게 아주 잠깐 열린 해방구이자 숨통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얇은 지갑으로도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곳, 간단한 의상과 분장만으로도 잠시나마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 낯선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입시와 취업 준비로 평생 마음 편히 놀아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이번 하루만 잠깐 놀고 다녀와서는 열심히 또 공부하겠다고 다짐한 10대 청소년들도 있었습니다. 힘든 공부를 마치고 마침내 간호사로 취직한 것을 축하받으며 친구들과 오랜만에 나들이를 간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마음껏 뛰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많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응원과 보살핌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입니다.
도대체 왜 거길 갔느냐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이 무고한 젊은이들은 남의 나라 축제를 흉내 내며 좋아하는 철부지 엠제트 세대가 아닙니다. 제발 조롱하지 마세요. 제발 헐뜯지 마세요.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그 어떤 참혹한 사진도 올리지 마세요. 그들은 설렘과 기대를 가득 품고 핼러윈이라 불리는 기념일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을 뿐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매년 핼러윈 의상을 입고 축제 분위기를 느껴본 젊은이들에게는 핼러윈이 무척 친근하고 반가운 날입니다. 일년 중 단 하루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일가족 모두가 함께 나들이를 간 경우도 있고, 클럽에서 성실히 일하던 코트디부아르 출신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한 시민이 1일 오전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쓰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취직만 하면, 코로나 시대만 끝나면,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오리라 믿으며 참고 또 참아온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엄마 손 꼭 잡고 부푼 마음으로, 거리두기 해제 후 첫번째 핼러윈을 맞으러 간 15살 소녀도 있습니다. 엄마와 딸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내가 달려갈 테니 조금만 버텨달라고 애원하던 남자친구가 보낸 카톡 알림창에서 ‘1’(읽지 않음 표시)이라는 숫자는 끝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숨 쉴 공간이 전혀 없어 ‘살려달라’는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질식하여 죽어간 젊은이도 있습니다. 사방에서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인파의 압력 때문에 친구의 손을 놓쳐버린 젊은이는, ‘내 탓’이라 자책하며 친구를 못 구했다고 괴로워했습니다.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는 딸의 휴대전화를 낯선 경찰관이 받았을 때, 부모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시신의 얼굴을 분명히 확인하고 나서도 차마 믿지 못하겠다며 다시 한번 우리 애가 맞는지 확인하러 가겠다고 일어서다 실신해버린 어머니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우리 애기 찾으러 왔어요”라는 엄마의 울먹임에 경찰관도 함께 울었습니다. 우리 딸 얼굴이 왜 멍투성이냐며, 왜 우리 딸은 심폐소생술(CPR)조차 받지 못했냐며 흐느끼는 엄마의 절규가 온종일 제 귓가에서 쓰라리게 울려 퍼졌습니다.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어 국민의 세금으로 그 자리를 누리고 있는 정치인들이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족의 슬픔에 찬물을 뿌리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마십시오. 네티즌들이여, 어떤 악플도, 어떤 조롱과 비방도 멈춰주십시오. 왜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인명을 구한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합니까. 그날 수많은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현장에 조카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어 오열한 의용소방대원도 있습니다. 좀 더 일찍 현장에 가서 응급조치를 했다면, 우연히 쓰러져 있는 조카를 봤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며 그는 울었습니다.
이 무참한 슬픔의 나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서로를 향한 무차별적인 돌봄과 보살핌과 어루만짐입니다.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어떻게든 서로를 도우려는 따스한 마음만이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슬픔에 빠진 유족들이 아무도 곁에 오지 말라고 도움을 거부하더라도, 서운해하지 마시고, 언제든 부르면 바로 닿을 거리에 있어주세요.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나 자신을 일으키고 돌봐야 합니다. 공간이 전혀 없어 똑바로 선 채로 질식한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저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 미안해졌습니다. 이 한 모금의 공기가, 이 한 움큼의 산소가, 그들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었을까 생각하면, 숨 쉬는 마디마디가 아파 옵니다.
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필사적으로 돌보고 보살피고 아껴주고 어루만져주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절대 무너지지 않고, 결코 부서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하고, 온 힘을 다해 그들 곁에 있어주어야 합니다. 바람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물러줄 그들, 별이 되어 하늘에서 반짝일 그들을 위해, 우리 절대로 무너지지 말고 버텨야 합니다.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지금, 국민은 서로를 지켜주며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의 손을 꼭 붙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모든 참사의 책임자들은, 국민의 투표와 세금으로 엄청난 권세를 누리는 그들은, 정녕 우리가 슬픔과 절망으로 무너지기를 바라는 걸까요. 우리가 정녕 아무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우리는 이 태산 같은 분노와 슬픔의 힘을 남김없이 끌어모아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아무리 짓밟히고 버려지고 무시당하더라도, 우리는 태양처럼 달처럼 바다처럼 매일 떠오르고 매일 빛나고 매일 차오를 것입니다. 먼저 간 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라도, 그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가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간신히 버텨낸 오늘 하루는 떠나간 그들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었으니까요. 참혹한 고통 속에 국가의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떠난 모든 이들이여, 당신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우리는 벌써부터 당신이 간절히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