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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족사진 인화도 못 받았는데 아들이 떠났다, 그냥 길을 걷다가

등록 2022-11-02 07:00수정 2022-11-02 15:55

이태원 참사로 서른살 아들 잃은 엄마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김아무개(30)씨의 어머니가 31일 보름여 전 찍은 가족 사진을 보고 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김아무개(30)씨의 어머니가 31일 보름여 전 찍은 가족 사진을 보고 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10월11일, 엄마는 간호조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여느 아들이 그렇듯 “무뚝뚝한데 또 자상한 아들”은 ‘축하해 고생했어 1년 동안’이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더니 자기도 웃긴지 ‘ㅋ’ 하나 더 찍어서 또 보냈네요.”

10월13일, 엄마는 두 남매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관에서 먼저 파일로 받은 사진 속, 가족들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맞춰 입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어떡해. 사진이 너무 잘 나왔어. 잘생겼죠? 아들이랑 같이 다니면 연예인 같다고 해서 어깨가 으쓱했다니까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아무개(30)씨의 엄마 김아무개(58)씨가 기억하는 2022년 10월은 별일 없이, 행복한 날들이었다. “사람들한테 그랬어요. ‘난 요즘이 제일 행복해’라고. 애들 다 일하고, 나도 새 일을 시작할 거고, 모두 건강하니까.”

10월30일 새벽 4시, 아들의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으로 “이대로 계속될 것만 같던 평탄할 날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한테 사고가 났어요.’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 핼러윈데이를 맞은 서울 이태원 거리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차림으로 집을 나섰던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들이 이태원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와~ 사람 많다. 길바닥이 아예 보이지 않네. 저래도 되나.” 티브이(TV)에 비친 이태원 거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 게 다였다.

‘왜.’ 엄마는 지난 30일 동국대 일산병원에 안치된 아들을 확인하고 1일 경기 수원연화장에서 아들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기까지의 순간을 되짚으며 이 물음이 떠나질 않는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10월30일 새벽: 이태원 사고 현장

엄마에게 아들 김씨의 사고 소식을 전한 건, 아들의 단짝 친구 장아무개(30)씨였다. 김씨와 함께 이태원에 갔던 그의 여자친구가 장씨에게 ‘(김씨가) 심정지 상태로 어딘가로 실려 갔다’고 했다. 장씨는 무작정 이태원으로 달려갔다. 물어물어 찾아간 사고 현장에서도, 주검이 우선 수습돼 있다는 서울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에서도, 부상자들이 실려 갔다는 순천향대병원에서도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시각, 엄마는 희망과 절망을 오갔다. “아들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신원이 거의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나한테는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까 ‘우리 아들은 사망자 명단에 없나 보다’ 기대를 하기도 했어요.”

30일 정오 무렵, 희망은 끝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티브이에 나온 실종자 신고 번호에 전화 연결이 되고 나서야 아들이 동국대 일산병원에 안치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0월30일 오후: 동국대 일산병원 안치실

엄마는 동국대 일산병원에 마련된 유족 대기실에 앉아 손등을 손톱으로 연신 꼬집었다.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안치된 아들의 몸은 잠자는 것 같았다. “네가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거야.” 울부짖다가 실신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검안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유족 대기실에서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길어졌다.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자식 잃은 슬픔에 오열하는 부모들이 보였다. “이게 진짜 뭐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아들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새벽 4시부터 이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똑같은 화면이 나오는 티브이만 보고….”

보다 못한 엄마의 30년 지기가 임시 기자회견을 열어 ‘빈소를 차리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검안서를 나중에 받기로 하고, 우선 빈소부터 차릴 수 있도록 조처가 이뤄졌다. “항의라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수원연화장에 빈소를 차린 건,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10월31일 밤: 수원연화장 빈소

빈소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청년들이 가득했다. “나는 우리 애가 그냥 평범한 보통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특별한 아이였어요. 동갑내기, 선배, 후배들이 다들 정말 좋아했다더라고요. 벌써 몇년 전 졸업한 대학교 교수님들도 두분이나 찾아오시고.” 아들이 새삼 귀했다. 그런 아들을 앗아간 사건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세월호를 보고, 건물이 무너져서 목숨을 잃는 걸 보면서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직접 당하고 보니까 안전불감증이란 말, 누군가 조금만 신경썼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요. 처음에는 내 자식만 생각했는데 자꾸 그런 게 보여요. 그 귀한 사람들이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길을 걷다가, 그냥 죽은 거잖아요.”

11월1일 아침: 화장

아들의 발인 날. 이날은 엄마가 간호조무사로 첫 출근을 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내 평범했던 생활, 그게 다 없어졌어요. 모든 일이 의미가 없어요. 제가 뭘 해야 한다는 의미가 없어요.”

5초의 묵념. 그리고 화장장 모니터에 관이 등장했다. 관 위로 붉은 기운이 어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닫혔다. 한시간 반쯤 뒤, 아들은 하얀 도자기 유골함에 담겨 돌아왔다. “잘 나온” 가족사진의 실물은 아직 사진관에서 찾지 못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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