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7시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광화문광장에서 집회 금지하는 오세훈 시장 규탄 집회’에서 랑희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모든 예술은 시위에서 분리될 수 없다. 책과 영화, 음악도 시위자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김해든 미 스탠퍼드대 학생은 13일 저녁 7시께 서울 광화문광장 놀이마당에서 열린 ‘광화문광장에서 집회 금지하는 오세훈 시장 규탄 집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집회 및 시위 인식에 대해 비판했다. 오 시장은 지난 4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광장을 ‘책 읽는 광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되레 광화문광장의 집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그는 “책도 시위 문화의 한 형태”라며 “시위 문화에 대한 탄압을 멈추고 ‘무식한 시위자’라는 낙인을 거두라”고 말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참여연대 등 18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광화문광장 집회의 권리 쟁취 공동행동’(공동행동)이 이날 주최한 집회는 서울시의 공식 승인을 받고 열리지 못했다. 주최 쪽은 종로경찰서에 지난 9월19일 집회 신고를 완료했지만, 서울시에 제출한 광장 사용신청서는 지난 11일 반려됐다. 서울시는 “이번 집회가 조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관련 조례에 광장의 목적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8월 광화문광장이 시민 휴식공간으로 탈바꿈되고 나서 처음으로 열린 집회였지만, ‘불법’ 딱지를 붙인 채 열린 이유다.
이와 관련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집회·시위 등 광화문광장의 사용 목적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실제 서울시는 광장 사용 신청이 들어온
기도회와 집회 등 2건에 대해 ‘목적 부적합’을 이유로 반려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공동행동은 이날 ‘불법’ 집회를 시작으로 두달간 서울시의 광장 사용 방침을 비판하는 시민불복종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집회가 광장이용 목적과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고 서울시에 물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이유를 찾을 때까지 이곳에 모여야 한다”고 했다. 현장에 나온 서울시 직원은 조례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주최 쪽에 통보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겨레>에 “공유재산법상 ‘불법 점용’에 해당해 변상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집회에는 시민 30여명이 모여 엄지 크기의 전자 촛불을 켜고 스케치북에 자유롭게 광장에 대한 의미를 적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것’, ‘광장은 시민의 공간이다. 권리를 구속하지 마라’, ‘시민의 공간 광화문 광장을 열어라’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예정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광장은 여가와 문화생활에만 쓸 수 있다고 했는데, 이곳에 참여하신 분들에겐 집회가 여가”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광장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면 어떤 것이 어울리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종로구 시민인 김한울(44)씨는 “광화문광장은 누구도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것이 춤이든, 노래든, 시위든 따질 것이 없다”며 “서로가 불편하면 서로 존중하면 되지 시가 나서서 규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