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서울동부지검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ㄱ씨를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ㄱ씨는 2015년부터 올해 2월까지 6년간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스에이치)·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협력업체 대표를 사칭해 ‘전세임대 제도’로 싼값에 전셋집을 구해준다며 지인과 동창들을 속이고 전세보증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전세가 아닌 일반 월세로 집을 계약한 뒤 가짜로 서류를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보여주고 전세보증금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 강동경찰서는 ㄱ씨 등이 피해자 60여명으로부터 약 107억원가량의 전세보증금 등을 뜯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검찰은 이중 피해가 확인된 76억원에 대해서만 기소를 결정했다.
전세 사기로 저렴한 집을 찾는 서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연도별 전세사기 단속현황을 보면, 2019년 107건(95명)에서 2020년 97건(157명), 2021년 187건(243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ㄱ씨는 어떻게 오랫동안 수십명을 속여왔을까. <한겨레>는 비슷한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자는 취지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받은 ㄱ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을 22일 살펴봤다.
“저희가 전세 물량을 많이 잡아둬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드릴 수 있거든요. 저희 쪽 전세임대 제도 덕분에 원래는 6억원인데 3억원에 해드릴 수 있어요. 2억4000만원만 준비하시면 저희 쪽에서 6000만원 지원할게요.”
솔깃한 제안에 피해자 ㄴ씨는 2019년 8월8일 ㄱ씨에게 5000만원을 송금한 뒤 그해 10월11일까지 총 5번에 걸쳐 총 2억4000만원을 ㄱ씨 계좌로 보냈다. ㄴ씨는 실제로 ㄱ씨가 약속한 강동구 한 아파트에 입주해 거주했다. 하지만 2년 뒤 ㄴ씨는 자신이 계약한 집이 전세가 아니라 월세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ㄱ씨가 개인적으로 월세 임차한 주택을 전세로 속인 것이다. ㄱ씨는 이런 방식으로 ㄴ씨를 포함해 2015년 7월13일부터 2021년 12월28일까지 약 6년간 10명으로부터 전세금 명목으로 총 31억2300만원을 가로챘다.
전세를 싸게 줄 수 있다는 말로 피해자들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은 ㄱ씨가 자신을 엘에이치·에스에이치 협력업체라고 사칭했기 때문이다. 엘에이치는 입주자가 물색한 주택을 해당 주택의 소유자와 계약을 체결한 뒤, 입주대상자에게 다시 재임대하는 ‘기존주택 전세임대’ 제도를 실제로 운용 중이다. ㄱ씨는 보증금의 일부를 공사가 지원하는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해 피해자들을 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ㄱ씨는 전세금뿐 아니라, 전세사업 투자금을 받는 식으로도 부당 이득을 챙겼다. 2018년 8월 ㄱ씨는 ㄷ씨에게 “엘에이치관련 전세자금대출로 여러 집을 잡아서 전세를 공급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투자금을 구하고 있는데 3000만원을 투자하면 월에 300만원의 수익금을 줄 수 있다”며 접근했다. ㄱ씨는 투자금 명목으로 ㄷ씨를 포함해 총 6명으로부터 32억744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ㄱ씨는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전세사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부동산임대차계약서 등도 위조했다. 그는 이밖에도 재건축아파트의 분양권을 살 수 있다고 속여 양수대금 명목으로 총 5억1000만원(4명), 재건축아파트 분양권 투자금 명목으로 총 7억4303만원(2명)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ㄱ씨는 2021년 4월부터 에스에이치 협력업체인 것처럼 꾸며 서울 강동구에 사무실을 차려 피해자들을 속여온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조사 결과, ㄱ씨는 전세사업이나 분양권 투자 등 관련 사업을 전혀 운영하고 있지 않았고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은 자신의 채무를 갚거나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일부 금액은 거짓말이 들키지 않게 다른 피해자의 투자금을 반환하는 등 돌려막기를 하는 용도로 썼다.
엘에이치 등은 계약이 의심된다며 누리집에 올라온 공고문을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한다. 엘에이치 관계자는 “모든 계약은 누리집에 공고가 되고 접수도 누리집에서 받는다. 계약이 의심된다면 누리집 공고문을 확인하거나 콜센터(1600-1004)로 연락하면 된다”고 했다. 에스에이치 관계자도 “전세임대 지원은 공사가 지정한 법무법인에만 심사 및 계약체결 업무를 위임하고 있다”며 “의심될 경우 계약 체결하기 전에 공사 쪽에 문의해달라”고 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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