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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울진 산불 6개월 지났지만…터전 잃은 주민들 “여전히 막막”

등록 2022-09-23 08:00수정 2022-09-23 19:48

임시주택 입주했지만…매일 울분
“자식들도 오지 말라 했어…올겨울은 어떻게 날지”
지난 15일 만난 울진군 북면 검성리 주민 이홍자(87)씨가 원래 살던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박지영 기자
지난 15일 만난 울진군 북면 검성리 주민 이홍자(87)씨가 원래 살던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박지영 기자

경상북도 울진읍에서 한평생 소를 기르던 남계순(71)씨의 일상은 지난 3월5일 이후 송두리째 바뀌었다. 울진 금강송으로 손수 지은 집과 축사가 산불로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됐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빈 집터를 바라보며 텐트에서 홀로 지낸 지 6개월. 남씨는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하루 대부분을 멍한 상태로 보낸다고 했다.

지난 3월6일 불타 버린 집과 축사 앞에서 <한겨레>와 만났던 남씨를 지난 15일 다시 만났다. 그는 텅빈 집터에 우두커니 세워진 33㎡(10평)짜리 임시조립주택을 가리키며 “오늘 드디어 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조립주택은 정부와 지자체가 제공했다. 지난 3월 화마가 남씨의 집과 축사를 덮친 이후 그는 집터 한쪽에 임시로 천막 텐트를 세워 생활해왔다. 그는 “날이 궂으면 이웃집에 가서 먹고 자고 했다”며 “전기 연결하느라 다른 집들보다 늦게 임시조립주택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남씨는 에이(A)4용지 크기의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산불이 나기 전 그가 손수 지은 2층짜리 단독주택의 겨울 풍경이었다. 눈 쌓인 집 모습이 아름다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뒀다는 그는 “한평생 모은 돈으로 비싼 금강송 가져다가 지었다. 정말 튼튼하게 지었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지난 추석에 남씨는 차가운 바닥에서 차례를 지냈다고 한다. 급한 대로 돗자리와 제사 도구 등을 구입해 상을 차렸다. 차례상이 변변치 않으니 자식들도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누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하나요. 불을 낸 사람, 경찰, 군수, 정부 누구 하나 진심으로 ‘미안하다’ 사과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게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산불이 난 뒤 남씨는 매일 밤 울분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지난 15일 만난 경상북도 울진읍 주민 남계순씨. 지난 추석 때 집터 땅바닥에 차린 차례상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박지영 기자
지난 15일 만난 경상북도 울진읍 주민 남계순씨. 지난 추석 때 집터 땅바닥에 차린 차례상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박지영 기자

지난 3월 울진 산불이 나기 전 남계순씨가 직접 지은 2층 단독주택을 사진으로 남겼다. 남계순씨 제공
지난 3월 울진 산불이 나기 전 남계순씨가 직접 지은 2층 단독주택을 사진으로 남겼다. 남계순씨 제공

울진 산불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화마로 터전을 잃은 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 만났던 울진군 북면 검성리 주민 이홍자(87)씨의 얼굴은 6개월 전보다 더 수척해져 있었다. 원래 살던 집 바로 옆에 마련된 임시조립주택에서 지내는 이씨는 남씨와 마찬가지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집을 새로 짓긴 지어야 하는데… 막막하지…”

검성리와 마찬가지로 산불 피해가 심했던 인근 소곡1리는 임시조립주택 9채가 세워졌다. 이날 만난 소곡1리 9명의 노인들은 산불로 쫓기듯 대피했던 6개월 전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소곡1리 주민 김수분(85)씨는 무섭게 덮쳐오는 불길에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쫓겨났던 그날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저려온다”고 말했다. “올겨울 저기서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여름엔 하도 덥고 갑갑해서 마을회관에서 지냈는데, 겨울엔 어떨지 참 걱정이지…” 김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집터 쪽으로 걷곤 한다. 보고 싶은 자식들도 이번 추석에는 차마 부르지 못했다. 소곡1리 주민 남정희(82)씨는 “9평 정도 되는 공간에 자식들 재울 곳이 어디 있겠나. 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새로 집을 지어 올려야 하는 노인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정부 지원금은 받았지만, 부족해 빚을 내야 하고 건축 지식도 없어 답답함을 토로한다. 소곡1리 주민 장중화(84)씨는 “300년 가까이 된 종갓집이 밤새 불타 사라졌다. 족보 초판, 선조들이 남긴 서책도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장씨는 “지원금 9천만원으로 집 지으려면 돈이 부족해 대출받아야 하는데 이 나이에 빚을 어떻게 지나. 돈도 돈이지만, 시골에서만 살던 노인이 내진 설계니 뭐니 용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만난 울진군 주민들은 지난 6일 집중 폭우로 수해를 입은 포항 이재민들 처지가 “우리랑 똑같다”며 마음 아파했다. 소곡1리 주민 김순남(81)씨는 “물난리 난 거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우리도 (산불)겪었는데 다 똑같은 입장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6개월 지나도 이렇게 회복이 안 되는데, 포항 사람들이 이제 곧 겨울도 다가오는데 안타까워 죽겠어요. 그분들 삶이 어떻게 하면 정상으로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을지…나하고 사정이 똑같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요.” (남계순씨)

지난 15일 만난 소곡1리 주민 장중화(84)씨의 임시조립주택 내부 모습. 박지영 기자
지난 15일 만난 소곡1리 주민 장중화(84)씨의 임시조립주택 내부 모습. 박지영 기자

지난 15일 찾은 경상북도 울진읍 주민 남계순씨의 임시 생활 천막. 박지영 기자
지난 15일 찾은 경상북도 울진읍 주민 남계순씨의 임시 생활 천막. 박지영 기자

지난 15일 경상북도 울진군 소곡1리 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임시조립주택 9동. 박지영 기자
지난 15일 경상북도 울진군 소곡1리 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임시조립주택 9동. 박지영 기자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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