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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 “소들도 살아야지…축사 문만 열어주고 도망쳤어요”

등록 2022-03-06 17:34수정 2022-03-07 09:39

산불피해 가장 심각한 울진군 북면 가보니
산림청장 “길가에서 발화…실화 추정”
6일 오전 11시30분께 경북 울진군 북면 사계1리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남계순(71)씨. 마을 대피령을 듣고 급하게 축사에 묶여 있던 줄을 끊고 대피했다고 한다. 대피 당시 급하게 끊은 줄을 보여주는 남씨.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11시30분께 경북 울진군 북면 사계1리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남계순(71)씨. 마을 대피령을 듣고 급하게 축사에 묶여 있던 줄을 끊고 대피했다고 한다. 대피 당시 급하게 끊은 줄을 보여주는 남씨. 박지영 기자

“너무 급하게 대피하는 바람에 소 우리 문에 묶여 있던 끈만 풀고 도망쳤지요. 산에서 불이 막 퍼져오니까…. 지들이 알아서 우리 밖으로 나가라고. 너무 걱정돼서 차에 물을 가득 싣고 오늘 새벽 2시쯤에 다시 와봤더니, 아이고 소들이 알아서 불을 피해 우리 밖으로 나와 있지 뭐예요.”

6일 오전 11시30분 경북 울진군 북면 사계1리에서 만난 남계순(71)씨는 밤새 화마가 휩쓸어 잿더미로 변한 집과 축사를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축사 천장은 불길로 녹아내렸고, 앙상한 축사 뼈대만 까맣게 그을린 채 남았다.

지난 4일 오전 11시17분께 북면 사계1리에서 5.6㎞ 정도 떨어진 두천리 산154번지에 발생한 산불은, 바람방향이 바뀐 5일 자정 무렵 남씨가 사는 마을까지 번졌다. 남씨는 한밤에 ‘몸만 빨리 빠져나오라’는 울진읍 부읍장의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소 16마리가 눈에 밟혔지만 축사 문을 열어놓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울진국민체육센터를 갔지만 한시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고 한다. “대부분 임신 9개월 정도 됐거나 송아지들이에요. 소들이 물도 제대로 못 마셨어요. 불길이 거세진다는 소식을 듣고 남겨진 소들이 너무 걱정돼 새벽에 아내와 함께 다시 왔더니, 글쎄 소들이 알아서 불붙은 우리 밖에 나와 있더라고요. ‘이리와 이리와’ 손짓하니 어미소와 송아지들이 뒤따라서 오는….” 소들은 다행히 죽지 않고 멀쩡했지만, 남씨는 “집도 축사도 다 타버렸다. 눈물이 자꾸 나서 미칠 것 같다”고 울먹였다.

남씨 축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울진군 죽변면에서 7년째 꿀벌을 쳐온 김형원(63)씨도 하룻밤 사이 새까맣게 타버린 농가를 보고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라면 줄지어 놓여 있어야 할 벌통들이 새까만 한줌 재로 변한 것을 보고 김씨는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벌통 250개가 모두 사라졌다. 벌들도 모두 죽었다. 쌓아 놓은 설탕 수백포대도, 기계도 다 탔다. 건질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일군 양봉인데….” 김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6일 오전 경북 울진군 북면 사계1리 주민 남계순(71)씨의 축사와 주택이 화재로 모두 불타 버렸다.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경북 울진군 북면 사계1리 주민 남계순(71)씨의 축사와 주택이 화재로 모두 불타 버렸다.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경북 울진군 죽변면에서 양봉업을 하는 김형원(63)씨가 화재로 모두 불타 버린 농가를 보고 허탈해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경북 울진군 죽변면에서 양봉업을 하는 김형원(63)씨가 화재로 모두 불타 버린 농가를 보고 허탈해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의 모습.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의 모습.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모습. 주인 없는 텅 빈 집 마당에 6마리 닭들이 장 안에서 울고 있다.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모습. 주인 없는 텅 빈 집 마당에 6마리 닭들이 장 안에서 울고 있다. 박지영 기자

잿더미로 변한 건 근처 북면 신화2리도 마찬가지였다. 28가구가 있는 신화2리는 마을 단위로는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산등성이에 층층이 자리잡은 집들은 하나같이 거센 불길에 새까맣게 타버려 지붕이 내려앉았다. 집 주변 산들은 타다 만 나무들 사이로 여전히 열기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장영동(86)씨는 산불 발생 2시간도 지나지 않은 4일 오후 1시에 대피소로 피신했다가 사흘만에 처음으로 집을 찾았다. 서울에서 급히 온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화재로 눌러앉은 집을 천천히 살폈다. 장씨는 “갑자기 집 뒷산에서 불이 넘어왔다. 그래서 정신없이 몸만 빠져나왔다. 농사지으려고 마당에 거름을 다 내놓고 있었는데, 와보니 다 타버렸다”고 말했다. 장씨를 부축하던 아들은 “지금 군청이나 정부 쪽에선 불타 버린 집들을 어떻게 복구할지 아직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막막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날 신화2리에는 화재 조사를 나온 군청 관계자와 취재진 외에 주민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갑작스럽게 대피하는 바람에 주인을 따라가지 못하고 남겨진 개 2마리가 마을골목을 배회하고 있었다. 개들은 사람을 볼 때마다 꼬리를 흔들고 주변을 뛰어다녔다. 주인 없는 텅 빈 집 마당에는 닭 6마리가 운좋게 화마를 피한 채 ‘꼬꼬’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울진 산불 최초 발화 추정지인 북면 두천리 산154번지는 신화2리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야산 주변이다. 보행로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 옆 배수로와 붙어 있다. 6일 찾은 현장에는 출입 통제선과 불이 번져나간 방향을 가리키는 작은 깃발들이 여기저기 꽂혀 있었다. 작은 불씨에서 시작한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산 위로 타들어간 흔적이 역력했다. 화재 원인 조사는 산불 진화가 완료된 뒤에 본격화할 예정이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울진 현장브리핑에서 “길가에서 발화한 것이라 담뱃불 실화 등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6일 오전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모습. 개 2마리가 목줄이 풀린 채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다.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모습. 개 2마리가 목줄이 풀린 채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다. 박지영 기자

울진 산불 화재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북면 두천리 현장 모습. 박지영 기자
울진 산불 화재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북면 두천리 현장 모습.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주민 장영동(86)씨의 주택이 화재로 지붕이 모두 눌러앉았다. 박지영 기자
6일 오전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주민 장영동(86)씨의 주택이 화재로 지붕이 모두 눌러앉았다. 박지영 기자

울진/박지영 기자 jyp@hani.co.kr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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