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스토킹 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지난 14일 신당역에서는 순찰 중이던 여성 역무원을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가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피해자 보호가 ‘뻥 뚫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18일 <한겨레>에 “현행 스토킹처벌법의 접근금지 명령과 신변보호 제도의 문제점은 ‘가해자 감시 수단’이 적절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스토킹처벌법을 통한 가해자 감시와 분리 조처의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더 많은 피해자가 목숨을 잃지 않도록 실효성이 높은 가해자 감시 수단을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한 대표적인 조처인 ‘스마트워치 지급’과 ‘100m 이내 접근금지’ 등은 범죄 예방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은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됐다. 허민숙 조사관은 “(스마트워치가 피해자 보호라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를 발견했을 때”라며 “(가해자와) 맞닥뜨렸을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21일 스토킹처벌법 시행 뒤 발생한 사건들이 이를 증명한다. 스토킹 살인범 김병찬(36)이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김병찬은 살인 범행 전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었다. 17일 저녁에는 대구에서 ‘100m 이내 접근금지’ 조처가 내려졌던 ㄱ(30)씨가 스토킹 피해자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수십 차례 전화해 괴롭힌 혐의로 체포됐다.
전문가들이 가해자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감시 장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박형식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3월 논문 ‘경찰의 범죄피해자 신변보호강화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스토킹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 사망 사건은 경찰의 신변보호 제도가 피해를 예방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데 커다란 흠결이 있음을 드러냈다”며 “가해자에게 지피에스(GPS) 추적 장치를 부착해서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 테네시주는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가정폭력 가해자뿐만 아니라 스토킹 가해자에게도 지피에스 추적 장치 부착을 명령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허민숙 조사관은 “(가해자 추적은) 피해자 사망이라는 참극을 예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허 조사관은 이 제도에 관해 ‘①피해자 근처 1㎞ 이내 등 일정 거리에 도달하는 경우 ②경찰·피해자에게 실시간 경보가 울리도록 해 ③피해자가 신속하게 대피하면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제도가 가해자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서 허 조사관은 “가해자를 실시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접근금지구역에 진입했을 때 피해자와 경찰에게 그 위치를 알려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 감시 수단 미비와 함께 스토킹 가해자의 구속수사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경찰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신변보호를 받던 스토킹 피해자가 스마트워치 등을 통해 다시 신고한 경우(7772건) 구속수사가 진행된 사건은 211건으로 전체 재신고의 2.7%에 그쳤다. 재신고 건수의 80%는 입건 없이 현장 조처로 끝났다. 장윤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스토킹 범죄는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구속영장 발부 판단 때 ‘재범 우려’나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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